광란자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제제는 외로운 아이였다. 가족 속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의 슬픔, 그 옆에 라임 오렌지나무와 뽀르뚜가가 있다. <햇빛사냥>의 제제는 입양되었다. 새 가족 속에서 제제는 여전히 외로운 소년이었다.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존재는 아담, 모리스 그리고 파이올리 수사다. 그리고 제제는 어느덧 청년으로 자랐다. 그의 곁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다, 친구 따르씨지우를 빼고는. 제제는 아직도 고독하다. 이따금 그는 세상을 향한 격렬한 슬픔과 분개를 표출한다. 동일한 행동과 반응이지만 어린 제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의 내면이 새삼 낯설고 궁금하다.

 

, 맙소사! 죽어 버리겠어. 죽어 버릴 거야. 없어져 버릴 테야! 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보잘것없는 삶을 끝내 버리고 싶어! 아아......! (P.53)

 

스무 살을 맞이하게 될 제제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나는 이를 독립 본능의 발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전의 제제가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물을 흘렸다면 건장한 제제는 세상에 도전하기를 열망한다. 거친 무대에 뛰어들어 열정을 불태우고 싶고, 뜨거운 사랑도 해보고 싶은 젊은이. 그는 우리에 갇힌 야생동물처럼 불안하게 서성인다. 가끔씩 포효한다.

 

그 집에서 뛰쳐나가 방랑자처럼 이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애정을 찾고, 사랑을 구하며, 나만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넓디넓은 이 세상에서 미지의 세계를 찾아 여행하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P.47)

 

국내의 경우 병역 의무와 보편화된 대학 및 대학원 진학, 취업 곤란 등의 사유로 인해 남성들의 사회 진출이 매우 늦어져 보통 이십대 후반 내지 삼십에 다다라서야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늦은 취업과 주택 마련 비용의 상승 등으로 경제적 독립과 결혼은 더더욱 지연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반면 서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대학 진학을 하든 아니면 취업을 하든지 간에 자식이 독립을 하는 문화가 보편적이라고 한다.

 

나는 턱을 괴고는 아버지를 향해 가만히 웃기만 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어쩌면 저렇게 멋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 어찌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78)

 

제제에게 돌아가 본다. 입양된 처지에서 가족들은 그에게 온전히 친밀한 존재는 아니다. 비록 과거보다는 위의 인용과 같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지만 부자가 상호 일정 양보와 타협을 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와병도 한몫을 거들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했지만 장래에 대한 방향 설정을 아직 못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나딸이라는 도시는 별로 큰 도시가 아니므로 여기에서 제대로 정착을 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을 중퇴한 그는 자연스레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여건에 처해진 셈이다. 이 작품에서 제제의 일과 중 상당한 분량이 수영에 할애되고 있는 연유가 그러하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인 사정, 게다가 가족과의 삶은 그렇게 편치만은 않다. 그의 마음은 밖으로 시종 떠나있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방황하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스무 살이 되는데도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P.39)

 

그의 아버지는 제제의 심중을 다소간 이해한다. 제제의 장래 설계에 대해 특정하게 유도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인내심을 보여준다. 그토록 바라던 참다운 아버지의 태도, 즉 자식을 애정으로 토닥거리고 진실한 공감으로 이해해주는 모습을 제제는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다만 제제의 첫사랑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우리는 제제의 아버지가 씰비아와의 교제 중단을 요구하는 구체적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직 연애를 하기엔 어리다고 보는 건지, 아니면 제제 누나의 말대로 그녀가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더럽고 구역질나는 계집일지도 모른다.

 

젊은이가 성인으로 자리 잡는 계기는 사랑과 결혼이다. 제제는 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 연애를 끊겠다는 약속을 한다. 사랑의 중단,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잃어버렸을 때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겪어야 진정한 감정이다. 제제 자신도 아버지도 제제의 감정의 깊이와 진정성을 과소평가한 셈이다. 오랜 시간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제제가 비로소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을 만났는데 강제로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의 삶에는 더 이상의 기쁨도 의미도 없고 오직 절망뿐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나를 파멸시키고 있었다. 그 모든 것 때문에 내 안에서는 더 살고 싶은 의욕이 도무지 일어나지 않았다. (P.138)

 

헤어짐의 고통을 절절히 깨달은 제제가 씰비아와 재회한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는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작별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가족들하고. 자신만의 작은 세상도, 유년기 시절도 이제 이별이다. 그것은 한번 떠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예부터 수많은 청년들이 제제처럼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건 쓰디쓴 실패의 나락을 겪어든 어차피 떠나야 할 길이다. 제제의 앞날에 축복을!

 

아버지는 나에게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활짝 열어 주었던 것이다. 갑자기 겁이 났다. 이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많은 비밀이 있어서 우리 인간들이 그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불쌍한 존재 하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이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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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지기 2015-02-1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동녘의 마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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