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사냥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2
J.M.바스콘셀로스 지음, 박원복 옮김, 김효진 그림 / 동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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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뚜가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던 나이어린 제제의 영상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데, 어느덧 제제는 열두 살의 소년이 되었다. 중산층의 의사 가족에게 입양되어 더 이상 가난에 고통 받지도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제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전작의 기본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밍기뉴와 뽀르뚜가는 꾸루루 두꺼비 아담과 모리스 아저씨로 대치되었으며, 언제나 너그럽게 제제를 포용하는 파이올리 수사도 있다.

 

제제가 맞닥뜨린 현실은 과거와는 또 다른 것이다. 낯선 가정, 학교, 도시, 세상은 냉혹하며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고 생각되었던지 아담과 모리스 아저씨가 제제의 우군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제제가 열다섯 살이 되어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까지 그를 지켜주고 돌봐준다. 이 점에서 제제는 행복한 인물이다.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고통과 역경에 힘들어 할 때 그들을 위로하고 힘을 보태 줄 누군가를 찾는 것은 대개 요원하다. 제제는 학교에서도 파이올리 수사를 비롯한 그에게 동정적인 수사들이 여럿 있지 않은가.

 

제제는 딱한 아이라고 할 수 있다.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과 뛰어난 지능, 분방한 상상력을 타고난 그는 환경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가족 중에서 자신을 이해하여 줄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의 어릴 적 심한 장난이 뽀르뚜가를 만나면서 줄어들기 시작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아빠의 부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내내 지속적으로 그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전작의 말미에서 자신의 생부를 부인하였다. 이 작품에서도 그가 아빠와 화해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소위 그가 철들고 난 시기 이후이다. 그동안 제제는 뽀르뚜가에게서, 그리고 모리스 아저씨와 파이올리 수사에게서 아버지상의 대역을 구하고 있다. 제제가 바라는 아버지상은 별게 아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반적인 아빠의 모습, 자신에게 진실한 감정과 애정을 품고 쓰다듬어 주는 그런 존재. 현실의 아빠들은 그렇지 못한 반면, 그들은 제제를 몽쁘띠니 슈쉬 같은 애칭으로 부르고 있어 대조적이다.

 

아빠란 이런 분이야. 내 몸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느낄 때까지 내가 잠든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P.182)

 

아빠라는 거 바로 그런 거야.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내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나 알아보고 잘 자라고 말씀하시는 거. 그게 바로 아빠야. (P.204)

 

이 작품에 이르러 작가는 성장소설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아담과 모리스는 자신들의 역할과 체재 기간을 사전에 밝히고 있다. 아담은 제제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도록 외롭지 않도록 그를 돕고 보호해 줄 것이며, 제제가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라나면 떠날 것이다. 모리스 아저씨는 제제의 온갖 사건과 푸념들을 지겨워하지 않고 따뜻한 눈과 귀로 들어줄 것이며 토닥여 줄 것이다. 제제가 혼자서도 처신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사랑을 알게 될 때까지.

 

제제의 말과 행동에 무조건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전작의 여섯 살 꼬마 제제와의 차이다. 제제의 악동 본능은 뽀르뚜가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여기서 다시 활짝 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자신 속에 악마가 들어있다고 스스로 말하였듯이 그의 장난과 돌출 행동은 강화된 측면이 다분하다. 심한 장난에 따른 처벌에서는 스스로 피해자이고 약자인 듯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년 제제가 꼬마 제제와 동일한 행동과 불평을 반복하는 장면에서 오히려 의아함을 느낀다. 제제는 수년의 시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고.

 

, ......차라리 죽고 싶어요. 차라리 화학 실험실의 진열장 유리를 부수고 그 안에 있는 독약을 먹고 죽고 싶어요. 그러면 어느 누구도 저를 더는 괴롭히지 못하겠죠. (P.92)

 

다시 태어나면 단추가 되고 싶어요. 아무 단추나요. 팬티의 단추라도 상관없어요. 인간이 되어 이렇게 고통받는 것보다는 그 편이 나을 거예요...... (P.267)

    

제제의 일탈이 상당 부분 성장기의 불안과 온건한 가족 역할 모델의 부재로 인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애정 부족과 정서 불만이 과잉 행동으로 표출된다고. 그렇더라도 전작의 어린 제제에 비해 공감도는 훨씬 감소한다. 제제는 외적 요인에 책임을 돌리지만 결국 핵심은 제제 자신이다. 제제의 어린 가슴에 남겨진 어릴 적 트라우마가 계속 작용을 하여 마누엘 마샤두 숲의 낯선 소리를 불러내는 것이다. 아담과 모리스 아저씨의 존재는 제제의 순수한 마음이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모든 사람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태양 말이야. 우리들의 희망의 태양. 우리의 꿈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 우리가 가슴속에서 달구고 있는 태양 말이야. (P.102)

 

그들은 외롭고 심약하며 비뚤어지기 쉬운 어린 소년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태양을 뜨겁게 달구고자 출현한 것이다. 지금 제제의 태양은 아담이 말했듯이 눈물로 가려진 태양, 조금 피곤하고 나약한 타약한 태양이다. 삶의 아름다움을 깨달아야 태양도 뜨거워질 텐데.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환상을 지닌다. 훨씬 키가 크고 힘도 세며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 그네들의 눈에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른들은 원하는 물건을 자유로이 살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해도 되는데 왜 자신들만 억지로 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은 항상 제지를 당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어른이 되면 무한한 낙원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어른. 그 말은 나에게 무척 멋있는 말이었다. 아담에게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P.168)

 

제제 또한 그러하다. 그전에 그는 오로지 자신의 관점에서만 세상사를, 양부모의 행동을 재단하고 불평하였다. 이 점을 앙브로지우 수사는 격동하는 심정으로 제제에게 일깨운다. 그가 양부를 이해하고 좋아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수년이 경과하여 보다 성숙해 진 후였다.

 

그분들은 아주 좋은 분들이에요. 너무 좋으세요. (P.396)

 

제제의 양부모가 나름대로 주의하고 신경 쓰며 양육에 노력하였고 그들에게 큰 잘못이 없음을 독자는 부인하지 못한다. 제제의 하소연은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 작가는 오히려 변화해야 할 것은 제제의 내면임을 에둘러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의지가 굳고 두려움이 없는 소년으로 성장해야 함을. 인생이란 알고 보면 그럭저럭 살만 하며, 사랑을 알게 돼야 인생의 가장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임을.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시간의 경과가 결부되어야 함을. 그때가 되면 아담과 모리스 아저씨의 환상 기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게 된다는 것도.

 

모리스! 모리스! 당신 말이 옳았어요.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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