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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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소중한 존재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인식하지 못한다. 물과 공기처럼 그것이 부족하고 사라지고 결핍될 때 비로소 가치를 깨닫게 되고 다급하게 갈구하지만 대개는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일생이 화살처럼 덧없이 순식간에 지나쳐가면 만시지탄 하리라. 우리가 놓치는 생의 가치를 희귀한 조로증에 걸린 한 소년의 눈을 통해 새삼 재음미하는 기회를 작가는 제공한다. 남보다 몇 배는 빠르게 세상을 사는 그에게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며 남은 생은 안타까울 뿐이다.

 

노화, 즉 늙어감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작중 아름이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이 약해지며 눈이 흐릿해지고 손에 힘이 없어 숟가락을 떨어뜨리게 될 때의 삼경 말이다. 더구나 깨닫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게 아니고 급속하게 겪을 때의 그것. 작가는 노화의 일련의 과정을 극도로 생생하게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재와 설정만 놓고 보면 앞을 못 가릴 정도로 눈물을 쏙 빼놓을 만한 이야기 전개가 예상된다. 사실 그런 대목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작가가 누구이던가. 어떤 순간에도 궁핍과 슬픔 속에 함몰되지 않고 미소와 기쁨을 능청스러움 속에 낚아 올리는 주특기를 보유하고 있는 작가.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P.79)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P.97)

 

보통, 평범, 일상은 흔히 무시되고 간과되기 쉽다. 희소성의 법칙이 가치를 정하듯 귀중하지만 흔한 것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기실 소중한 것은 평범함 속에 깃들어 있는데 말이다. 병자는 일반인의 건강이 절실하게 다가오지만, 청춘이 자신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한다.

 

전반부는 아름이가 술회하는 어린 엄마 아빠의 이야기다. 확실히 열일곱의 나이에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를뿐더러 드문 사례다. 부모보다 신체적으로 늙은 아이는 정신적으로도 더 성숙하다. 세 가족의 역경을 통해서 우리들은 역설적으로 생의 신비와 경이를 새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딸랑이 소리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 그걸 보고 웃는 부모. 그 미소 속에는 사람에 대한 경이와 겸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본인들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정말 그랬다. (P.63)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어른만 되면 하고 싶었지만 금지당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은 글자 그대로 독립을 의미한다. 거친 세상에 홀로 서서 헤치고 버티어 나가기.

 

아버지는 인생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란 단어에서 어쩐지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알았다. 그건 단순히 피로나 권력, 또는 타락의 냄새가 아니었다......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외로움의 냄새였다. (P.67)

 

그러면 나이듦의 미덕은 무엇일까? 타인을 보다 많이 이해해 줄 수 있다는 게 아닐지. 아름이가 엄마의 가출을 용서하고 이해하듯이.

 

병원비 마련을 위한 방송 촬영 장면. 아름이 병을 처음 알게 된 날의 심정을 묻는 작가에게 언뜻 쓸데없어 보이는 답변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아빠.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억누를 수 없다. 요새 눈물이 너무 헤퍼져서 큰일이다.

 

후반부는 아름과 서하의 사랑의 교감으로 이어진다. 육체 연령 팔십대의 희귀병자라고 사랑의 감정을 갖지 못하란 법은 없다.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아닌가. 그에게는 또래 이성과의 교제가 또 하나의 절실한 필요와 욕구일 수 있음을 인정하자. 사랑의 긍정적 효과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점이다.

 

모든 것이 의미있고, 중요해지는 날들이었다. 그애가 하는 얘기, 그애가 쓰는 단어, 그애가 보낸 노래, 그애가 가른 여백, 그런 것이 전부 암시가 됐다. 나는 이 세계의 주석가가 되고, 번역가가 되고, 해석자가 되어 있었다......내 짐작이 맞았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탓에 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져버렸다. (P.233)

 

아름과 서하의 이메일 스토리는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을 드리운다. 아름이가 말했듯이 하느님이 새삼 이제 와서 아름에게 관심을 쏟지는 않을 텐데 하는 직감, 언제나 그렇듯이 안 좋을 예감은 적중하는 법, 밝혀지는 진실.

 

우리는 아름의 슬픔과 실망과 허탈을 이해한다. 그가 큰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세상을 떠나기 전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자그마한 기쁨을 누리고자 했을 뿐인데. 그의 자학적인 게임 탐닉을 착잡한 심정으로 공감한다.

 

내 안의 깊고 깊은 세계가 클리어된 동시에 문을 닫아버린 느낌. 모든 것이 해결되고 분명해졌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기분. 신음은 그 어두운 동굴에서 길 잃은 바람처럼 터져나왔다. (P.284)

 

이 작품은 조로의 영혼이 찬미하는 인생의 청춘과, 계절의 청춘 이야기다. 스스로 아름다워,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인 줄 모르는 소년(P.335)과 그 시절. 언제 살고 싶어지느냐는 서하의 물음에 대한 아름의 답변처럼 삶의 진실한 의미와 가치는 일상의 평범함 속에 있음의 재발견. 아름에게 보통사람들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소한 순간들, 행위들(P.271~272)이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리고 죽음과 새 생명이 교차하는 순간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순리임을 덧붙여준다. 첫 장편 도전에 묵직한 소재와 주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낸 작가의 역량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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