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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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내한테 이 작품을 읽어봤냐고 물었다가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다. 자신은 학창 시절에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하면서. 본시 안티 기질이 다분하여 남들이 많이 읽은 책은 일부러 외면하던 스타일이라 호기심과 무관심의 경계선에 오랫동안 올려두었던 책을 홧김과 오기로 읽는다.

 

제제의 영상에 어릴 적의 나, 오늘날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독자들치고 제제에게 양가적 감정을 갖지 못하는 이는 없으리라. 그의 꼬마 악마적인 장난에 절레절레 손사래를 치거나 다소 심하지만 너털웃음으로 넘기는 반면 가혹한 매를 맞고 버림받은 아이마냥 방치되는 장면에는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 고백하건대 통근 전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찔끔거리는 눈물을 삼키느라고 창밖 멀리 응시한 적이 두어 번 정도 있다.

 

제제에 대한 주변의 평은 양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을 포함한 이웃들에게 그는 극도의 장난꾸러기일 뿐이다. 제제에게 호의적인 이해를 갖는 인물들도 있다. 빠임 선생님은 제제를 황금 같은 마음씨를 가진 아이”(P.119)라고 부른다. 뽀르뚜가가 제제에게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 연유도 단순한 동정과 연민의 차원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제제의 집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았다면 제제와 그의 장난에 대응하는 태도가 좀 더 너그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글로리아 누나 외에는 자신을 감싸고 포용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 가족의 모습. 심한 장난으로, 밖으로만 떠도는 외에 제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달리 없다. 비록 남달리 영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지만 겨우 다섯 살,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였으므로. 제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어릴 때에 꽤 많은 매를 맞고 자랐다. 심한 장난도 있었고, 대개는 말을 안 들어서다.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해버리는. 그래서인지 제제가 끔찍한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마치 자신인 마냥 슬픈 추억이 물밀 듯 몰려옴을 느낀다. 자신의 말대로 제제는 정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이었던가.

 

작고 못생긴 라임오렌지나무가 처음부터 제제의 맘에 들었을 리 없지만, 나무는 제제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의 말을 싫증내지 않고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악연으로 시작한 뽀르뚜가와의 만남은 역으로 더없이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제제는 뽀르뚜가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뽀르뚜가에게 매달리는 제제에게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동년배의 또래와 우정을 갖게 되고, 부모 형제에게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애정을 품는 법인데 제제는 그러하지 못하다.

 

아이가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에드문두 아저씨의 말처럼 생각이 자라고 커서 우리 머리와 마음을 모두 돌보게 돼. 생각은 우리 눈과 인생의 모든 것에 길들게 돼.”(P.100)는 현상이지만, 또한 현실을 깨달음을 뜻한다. 현실이 마법세계가 아니며 행복과 기쁨보다는 불행과 슬픔을 마주치는 경우가 더 많음을. 인생은 고()라고 하는 거창한 설법이 아니더라도 제제는 가장 소중한 존재의 상실을 통해 뼈저리고 적나라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시는 꽃이 아니라 물 위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수많은 이파리들과 같은 것이었다.” (P.244)

 

이제는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P.270)

 

제제에게 있어 부성(父性)의 존재와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실직한 아빠를 대신해서 생계를 위하여 밤늦도록 일하는 엄마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그를 대신하는 글로리아 누나를 통해 제제는 모성(母性)의 향수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아빠의 실직은 집안 전체에 어둠을 가져왔다. 제제가 이를 뼈저리게 절감한 것은 크리스마스의 가라앉은 분위기와 선물의 부재를 통해서다. 가난뱅이 아빠, 무능한 아빠, 폭력적인 아빠의 대척점을 제제는 뽀르뚜가에서 찾는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이랑 같이 있으면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아요. 그리고 내 가슴속에 행복의 태양이 빛나는 것 같아요.” (P.202)

 

뽀르뚜가를 잃었음에도 제제는 자신의 아빠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뭣 때문에 날 무릎에 앉혔을까?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냐. 내 아빤 돌아가셨어. 망가라치바가 내 아빠를 죽였어.” (P.290)

 

밍기뉴가 첫 번째로 피운 작고 흰 꽃 한 송이로 제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였듯이 제제는 뽀르뚜가의 상실과 생사를 오간 열병으로 유년 시절에 작별을 전한다. 그들은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P.285).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을 밝고 즐겁게 끝맺지 못하였다.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제와 밍기뉴, 뽀르뚜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여운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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