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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로봇 스누트의 모험
브라이언 게이지 지음, 캐서린 오토시 그림, 한강 옮김 / 더북컴퍼니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음, 로봇 도시를 배경으로 로봇을 소재로 한 동화다. 로봇간의 대결이란 면에서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지만, 스스로 사고하는 로봇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아이 로봇>과도 유사성을 지닌다. 다만 내용 전개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감안하면 동화라고 해도 고학년에 어울린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독재자 빅 브라더가 사람들의 의식과 감정을 통제한다. 그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로 사람들을 감시한다. 이 책의 기본 토대는 로봇판 <1984>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돔 시의 로봇들은 광채 로봇, 경비 로봇, 일벌레 로봇의 계급으로 구분되며 도시를 이끄는 리더는 파더 스크린이다. 파더 스크린은 자체로 선전 도구이자 감시 기구이다. 모든 일벌레 로봇은 빛을 생산하는 작업에 매진해야 하며, 그들은 전설적 영웅 ‘러’를 찬양하고 닮고자 애쓴다. 일하고 소비하고 잠자는 일상의 반복이지만 일벌레 로봇들은 행복하다.
어느 사회, 조직에서나 비주류, 불평불만자는 존재한다. 그들은 사회와 조직의 안녕을 깨뜨리는 저해 요인이다. 조직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신속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 반면 그들은 외관상 평화로운 조직이나 사회에 실상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경보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이 작품에서는 꼬마 로봇 스누트가 그러하다. 스누트는 호기심 가득하고 궁금증을 품고 있으며 항상 공상에 젖어 있다. 생산 능률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가장 형편없는 로봇이다. 스누트는 가장 뛰어난 로봇이기도 하다. 대장장이 로봇 실로는 스누트를 뛰어난 지능을 지닌 로봇으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돔 시의 로봇 사회는 철저한 독재 사회다. 파더 스크린, 즉 실로의 동생 시로가 지배하는 광채 로봇이 지배계급을 이룬 가운데 체제 위협적인 요소는 일체 통제되며 끊임없는 세뇌 공작으로 일벌레 로봇들은 자신들이 실상은 빛의 로봇이라는 사실마저 인식하지 못한 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인간 사회에 적용시켜보면 과두 지배체제, 언론 왜곡, 교육 통제, 감시의 경찰국가, 우민화 정책, 조작된 영웅 등 독재 정권이 즐겨 사용하는 모든 기법들이 그대로 확인된다. 여기에 저항하는 개인은 국가와 민족의 반역자이자 매국노로 지탄된다. 사회에서 조직으로 범위를 축소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된다. 조직에 충성하던가 아니면 입을 다물라.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는 이론적으로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곤란하다. 사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거나 조직과 조직 내 이웃들의 안녕을 뒤흔드는 불편한 존재로 치부되며 설사 정당하더라도 그는 조직에 머무르지 못한다. 조직과 평범한 성원들은 내부고발자를 미워하는 법이다.
“너는 일벌레 로봇이 아니야, 친구. 너는 혁명가야!......그래, 나는 혁명가야.” (P.71)
스누트는 자의든 타의든 혁명가다. 그는 의문과 의심을 품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한다.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미묘하게 흠이 존재하는 돔 시의 체제, 그 작은 틈으로 인해 돔 시의 로봇 사회와 지배 체제는 붕괴되었다. 빛이 사라지자 스누트를 포함한 일벌레 로봇들은 물론, 광채 로봇과 경비 로봇들은 모두 멈춰버렸다.
동화는 속성 상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과장과 비약, 상상의 요소가 풍부하다. 이 작품의 경우 결말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안겨주는데, 태양이 떠오르면서 빛의 로봇들이 모두 회생한다는 점이다. 나비로 탈바꿈한 페르난도는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적으로 예증한다. 돔 시의 로봇들은 진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실로가 이를 숨기고 있었던 점, 그리고 끝내 오브와 파편에만 주의를 환기시킨 점은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장편 동화 한 편에 너무나 많은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게 아니었을까. 작가 자신의 이념, 자유와 정의의 본질, 개체와 조직, 사회의 관계, 인공과 자연, SF적 요소와 극적 재미 등. 조금만 욕심을 덜 부리고 스토리라인을 압축하였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옮긴이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작가가 번역을 하는 경우는 간혹 있으므로 특이할 게 없지만 동화도 쓰는데다가 외국 동화도 번역을 하니 무슨 작품을 어떻게 번역하였을지 궁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