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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 이야기 - 時設: 시적인 이야기
한강 지음, 우승우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부처를 믿으시기에 초파일에 몇 번 절집에 가본 적이 있다. 경내를 온통 둘러싼 연등 무리와 본전 내 천장에도 그득하게 널려 있는 무수한 연등. 한켠에서는 아기 부처를 목욕시킨다고 열심히 물을 끼얹는 사람들의 줄이 늘어서 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연등이 점화되었을 때의 휘황한 정경이 어떠한 감상과 소회를 가져오는지. 절집 방문은 낮 동안에 잠시 한정될 뿐이므로.
작가 한강이 불교 소재의 글을 쓰다니 약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문학상을 수상한 중편도 불교 소설이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다루었으되 본격 구도 소설은 아니다. 차라리 일종의 성장소설로 이해하고 싶다. 백여 쪽 남짓한 얄팍한 분량의 작품이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생의 빛과 그늘의 폭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어른이 되어 회상하는 빛나는 유년시절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진실로 생의 굴곡과 애락을 겪지 않고 기쁨의 집에 사는 특혜를 누린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달픈 가계,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다툼. 무엇보다도 가까운 존재와의 영원한 작별이 주는 심리적 외상.
이승에서의 삶이 천국과도 같은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종교가 발붙일 여지는 없으리라.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 견디거나 제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 발현한다. 인간은 누구든지 종교적 성향을 일정부분 지니게 된다. 자신을 무신론자 내지 무교주의자라고 지칭하는 이들조차도 마음속에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인간이 곧 종교인이 되지는 않는다. 세속과 풍진의 삶을 버리고 탈속과 피안을 추구하는 일은 심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속계의 인연을 끊는 일은 그만큼 지난하기에 우리는 승려와 사제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게 아니겠는가.
시설(詩說)은 시적인 이야기다. 책표지에 따르면 시처럼 깊고 산뜻한 그림소설이란다. 일반적 소설의 절박한 다그침이 안보여 읽는데 편안하다. 선이의 생은 조용히 흘러간다. 흐르는 물결 속에 윤이의 죽음, 앞집 할머니와 어머니의 노쇠, 작은오빠의 투병, 그리고 자신의 입산이 스며든다. 큰오빠의 결혼과 임박한 출산도. 절집에서는 노스님의 입적과 다비식, 상행자의 환속과 자신의 수계가 이어진다. 선이를 불가로 이끈 것은 어릴 적 동생과의 일화였다. 흰 꽃과 붉은 꽃이 어우러진 연등. 동생 윤이가 가장 예쁘다고 가리킨 흰 꽃 영가등. 사미니가 인도하는 커다란 붉은 꽃에 홀린 선이. 이때 이미 생과 사의 인연 나뉨이 시작된 것이다. 그가 작은오빠의 물감으로 그린 붉은 꽃, 화선지에 붉은 물감으로 그린 꽃, 학교를 떠날 때 뜨거운 아랫배에서 붉게 젖은 속옷, 그리고 산문 입구의 자목련 나무.
인생이란 마주침과 헤어짐의 인연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다. 다가오는 인연을 꺼리거나 피하지 않고 담담히 감내할 때, 빚어지는 상처와 치유로 우리는 성숙해진다. 그리고는 불현 듯 알게 된다. 지등 속의 불꽃이야말로 붉은 꽃의 실체이며, “어두우나 밝으나 오롯이 거기 있었던, 늘 거기 있었던 마음 한 자리”(P.100)이라는 사실을.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