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학고재 산문선 16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생전에 누리지 못한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를 사후에나마 누리는 혜곡 최순우 선생은 진정 행복한 분이다. 그의 성북동 옛집은 시민문화유산 1호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설파한 공이 보답을 받는 셈이고 우리 것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매우 성장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책의 의의와 성격을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활짝 피어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엿본 독자라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에서 드디어 우리 것을 아름답게 꽃피우게 한 마음씨를 알게 될 것이다.” (책머리에서)

 

이 책은 앞선 책과 짝을 이루면서 미진하였던 저자 자신의 체취를 좀 더 짙게 드러낸다. 앞선 책에서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독자에 따라서는 분량이나 소개되는 유적과 유품의 양에 힘겨워하기도 하고 글쓰기의 초점이 사물지향에 가까웠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기서는 어깨에 힘을 빼고 다소 느긋한 마음가짐과 잔잔한 어조로 우리 옛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자신의 개인적 심경을 토로하거나 신변잡기적 일화도 소개하여 인간지향에 근접한다.

 

예전보다는 외견상 상황은 약간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 것에 대한 진지한 모색과, 특히 실생활에서의 반영은 요원한 분위기다. 우리의 의식주 문화는 이미 전통보다는 서구에 친연성을 느낀다. 우리말을 갈고 닦으려는 노력보다는 순수한 우리말이 외래어에 의해 멸실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할 판이다. 옛것은 동물원과 박물관에서 보는 신기하고 기이한 존재일 뿐 그것이 오늘의 나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질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그들 자신 속에 도사리고 앉은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전통을 들고 나오는 작가들이나 전통을 외면하는 작가 또는 전통에 반발하는 작가 등등이 있지만, 과연 한국미의 전통이나 동양미의 전통을 깊이 체험하고 전통을 평가한 사람이 그 중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앞서는 것이다.” (P.27)

 

옛것의 미학을 고답적으로 간주하는 견해는 과거와 단절시키는 위험성을 지닌다. 우리의 도자기 문화를 보면 대개는 고려 시대의 비색 청자와 상감 청자의 고고한 품격을 극상으로 치고 이후로는 쇠퇴하는 흐름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퇴화된 유물이며, 조선 백자는 평민 수준으로 하향화된 것으로. 기술적 관점에서는 이런 시각도 분명 가능하지만, 고려자기와 조선자기는 향수 계급(귀족과 백성)과 용도(감상과 실용) 등에서 분명한 차이점을 지닌다. (고려자기와 달리) 건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 현대에도 통용될 만한 미적 의의라는 점에서 조선 자기는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저자도 이렇게 상찬한다.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듯 한 느낌이 있다.” (P.157)

 

이 분청사기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가슴 밑창부터 후련해지는 멋과 아름다움은 우리 도자사뿐만 아니라 동양 도자사에서도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계인들의 시각에 새로운 안복을 누리게 해 주고 있다.” (P.161)

 

우리 옛것을 백날 쳐다본다고 해서 새삼 숨은 아름다움이 홀연히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과 언론의 감화를 통해 관념적으로 한국미의 특성에 대해 줄줄 외울 수는 있겠지만 진실로 마음의 감흥이 촉발된 경우는 고백하면 거의 없다.

 

실상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길은 도자기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있으며 도자기의 마음이란 그릇에 나타난 아름다움의 의지를 말한다. 이러한 의지는 바라보고 또 만져보고 조용히 대좌하고 있으면 자기들 스스로가 그 아름다운 비밀의 문을 조금씩 열어 준다.” (P.51)

 

위 대목은 비록 도자기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건축과 회화 등 예술과 문화 전반을 아울러 통용될 수 있다.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 마음을 이해하고자 애쓴다면 사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진정마저 깨닫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옛것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연원은 삶과 자연을 대하는 선인들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삶의 희노와 애락은 인간이라면 뿌리칠 수 없는 요소이므로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대자연에 비추어 보면 인간은 미미하고 찰나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어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인들은 전통미에서 철저한 정밀성과 공교로운 세밀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바싹 다가서서 감상하기 보다는 몇 발짝 떨어져서 전체적인 조화 속에서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였다는 것이다. 동양의 산수화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연과 어울린 인간의 가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동양의 풍경화란 서양 풍경화에서처럼 화가가 바라본 자연의 일각을 묘사한 그림, 즉 바라보는 풍경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기가 들어가서 생각하고 느끼고 또 두루두루 돌아보며 즐기는 입장을 택한다는 말이 된다.” (P.197)

 

많은 내용이 앞선 책과 밀접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유산에 대한 작품 분석보다는 거기에서 찾을 수 있고 느꼈을 때 갖게 되는 아름다움 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 더구나 저자가 생전에 마주치고 헤어졌던 고인(김환기, 장욱진, 전형필)에 대한 추억담, 한국전쟁과 이후의 어렵고 궁핍했던 시절에 얽힌 일화들(특히, 바둑이 이야기)은 회고와 애상의 정취를 드리우고 있어 전통미의 옹호자로서가 아닌 인간 최순우 선생을 보다 가깝게 이해하도록 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보았다면 안목의 지평이 보다 넓어지고 심안도 깊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분량 면에서나 옛것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를 갖추게 될 수 있는 점 등에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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