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예의 시원, 에도희작과 짓펜샤 잇쿠
강지현 지음 / 소명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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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학사는 17세기 이후를 근세로 분류하는데, 근세 전기는 오사카와 교토 중심의 상방문학으로, 18세기 이후는 근세 후기로 에도 중심으로 구분된다. 근세 문학은 문예의 중심이 무사에서 상인계층으로 이동하여 죠닌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정치적 안정에 따른 상공업의 발달, 막부와 영주 간 통치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인프라의 구축, 사회계층 간 신분이동의 곤란 등이 주된 배경이다.

 

저자는 18세기 이후 에도 문학의 중심인 희작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희작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을 뚜렷이 인식하고 (교훈이 아닌) 우스움을 유일한 미의식으로 표방하는 소위 희작정신을 지닌다. 보편적, 통속적인 대중의 도덕과 인정세태를 묘사하고 다양한 언어유희를 동반하여 극도의 재미를 추구한다.

 

먼저 제1장에서는 골계본의 대표작 <동해도 도보여행기>를 통해 이 작품이 당대와 후대의 대중 문학과 타 장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변용되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동해도 도보여행기>는 풍경 묘사를 생략하고 특산품과 풍속을 골계적으로 묘사하며, 여관여인들과의 유희와 장난, 억지 빗대기와 농담이 두드러지는 교카 등 당대 서민들의 기호에 철저히 충실하고 있다.

 

저자는 일대 베스트셀러인 <동해도 도보여행기>가 이후 우키요에와 주사위판 그림으로 확장되면서 장르 간 결합 현상을 보이는데 주목한다. 주사위판 그림을 통해 역으로 에도시대 풍속을 엿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표상문화론에 입각한 통합적 사고에 의한 접근”(P.46)으로 분석한다. 이하에서는 주사위판 그림을 통해 <동해도 도보여행기>를 읽고 있는데 상당 분량(170여 쪽)을 차지하여 이 책의 주 콘텐츠라고 할 만하다. 5편의 주사위판 그림과 원작 소설의 삽화를 통해 원작 내용의 반영과 변용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전문적이고 기계적인 기술이 많아서 비전공자로서는 재미없는 대목인데, 그래도 번역된 2편 이외의 원작 내용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주사위판 그림은 원작 내용과 달리 사건 순서의 변경과 차용, 발화자의 역전 등 수법을 구사함이 특징이다.

 

이후 생산되는 만화, 영화 및 TV 드라마 등의 경우 원작을 토대로 하지만 원작의 틀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각색의 모습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원작의 이름만 빌린 것이라고 하겠지만, 당대 관객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2장에서는 그림소설[쿠사조시]에 대한 분석으로 황표지와 합권을 다루고 있다. 황표지와 합권은 표절과 모방을 주요 기법으로 재창작 방식을 도입하는 사례가 많으며, 특히 작가 자신을 희화화시켜 등장시키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친근미와 해학성의 이중적 효과를 의도하는 것으로 나체 취향과 다복녀, 즉 추녀 취향도 해학미 부여라는 동일한 목적에 기여한다. 그리고 황표지와 합권은 그림소설답게 삽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독자에게 즉각적인 흥미와 아울러 웃음 유발을 의도하고 있어서이다.

 

여기서는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에서 소개된 <잇쿠, 겨우 창작하다><미남 대할인 판매>외에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귀명정례 기묘한 자식받침대의 지팡이>, <돋보기 들판의 어린 풀>, <적본의 쥐 흑본의 여우 두 이야기 혼인 기담>, <다케모토 기다유가락 무사>, <여행 중 수치를 써서 버린 한 통>, <여행 중 수치를 써서 버린 한 통>, <어설픈 귀동냥> 등은 짓펜샤 잇쿠의 작품이고, <교덴 덧없는 세상 술에서 깨다>(시키테 삼바), <손수 담근 아코젓갈>(혼젠테 즈보히라) . 제목만으로도 무척 흥미진진할 것 같아서 읽고 싶지만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 대상으로도 확고한 전통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에도희작의 골계본과 그림소설 등에서 연원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기발한 착상, 황당무계한 스토리, 그로테스크한 묘사 등은 현대에 들어와 무에서 생성된 특성이 아니다. 이것은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에 대한 일람만으로도 충분히 공감과 동의가 가능하다.

 

전문적이고 학술적 성격의 저작이지만 중간의 기술적 부분을 건너뛴다면 흥미를 잃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다. 더구나 잇쿠의 작품집을 읽었다면 저자의 분석 도중에 작품 내용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소개되지 않은 다른 에도희작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어 유익하다.

 

저자는 부록으로 자신의 에도희작 연구논문 요약본과 짓펜샤 잇쿠 연보를 수록하고 있으며, 일본문학의 흐름도 간단히 정리하고 있어 독자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저자가 번역한 <짓펜샤 잇쿠 작품 선집>을 읽고 나서 부족한 해설에 미흡함을 느껴서이다. 작가 및 작품세계, 나아가 에도희작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고 싶었는데, 마침 옮긴이가 집필한 저서가 몇 권 있는 걸 알게 되어 살펴보고 이 책을 읽기로 하였다. 2009년의 <근세일본의 대중문학>은 용어 자체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게 큰 난점이다. 작품명과 인명을 한자 독음 그대로 표기(동해도중슬률모, 굴신일구저, 색남대안매 등)하여 이해에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2013년의 <일본근세문예의 웃음, 도보여행기물과 충신장물>도 마찬가지며 한자가 직접 노출되어 있어 문외한은 섣불리 다가가기조차 어렵다. 즉 상기 두 책은 아마추어가 아닌 모두 관련 전공자의 연구를 위한 것이다. 참고로 이 저작은 2012년에 출판되었으며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한층 신뢰감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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