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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의 대륙 -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부제: 남아메리카의 발명자, 훔볼트의 남미 견문록
어렸을 때부터 여행기와 탐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근자에 우연히 서점가에서 훔볼트를 다룬 신간을 보는 순간 열정이 도지고 말았다. 옛 항해도를 연상케 하는 근사한 겉표지와 ‘남아메리카의 발명자’라는 자극적 부제(원저의 부제에는 없던 과도한 문구!), 올 컬러의 사진과 도판들, 더하여 고급스러운 종이의 질하며.
아메리카 대륙의 탐험가라면 누구보다도 콜럼버스가 떠오른다. 정복자 피사로도 기억나고, 다윈의 항해기도 있었지. 훔볼트는 잘 모르는 인물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잊혀져 있던 훔볼트를 소개하고 있다. 19세기에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훔볼트의 삶과 남미 탐험을.
훔볼트와 동료 봉플랑의 19세기 초의 5년간에 걸친 남미 답사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놓고 감행한 도전이다. 수백 년에 걸친 스페인과 브라질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남미 정글의 오지는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두렵고도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다. 지배세력은 은광 등 경제적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훔볼트가 뛰어든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 차원에서 막대한 자비를 들여서 말이다.
훔볼트는 탐험과 모험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지리학과 생물학 및 지구과학 전반에 걸쳐 방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는데, 앞서 읽은 <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에서 광범위한 관찰과 탐구의 증거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홈볼트의 남미 답사의 결과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남미의 거대 하천인 오리노코 강과 아마존 강의 상류가 자연수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 점이다. 오늘날 카시키아레 강으로 알려진 이 수로는 오리노코 강의 상류와 아마존 강의 지류인 네그로 강의 상류를 연결하는 희귀한 자연현상을 보여준다.
둘째, 침보라소 산의 등정이다. 오늘날 남미 최고봉은 해발 약 7천 미터의 아콩카구아 산이지만, 당대에는 침보라소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훔볼트와 그의 동료는 별다른 장비 없이 거의 맨몸으로 정상 부근까지 올라가는 위업(또는 만용)을 보여주었다.
셋째, 수천 종의 신규 생물 종을 발견하고 채집하여 생물학의 지평을 확장하였으며, 열대 지역의 식생과 지질, 자연에 대한 새로운 체계를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저자는 훔볼트의 삶을 거슬러 올라간다. 출생과 어린 시절, 그리고 향후 진로에 대한 부모와의 갈등. 훗날의 대탐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차곡차곡 관련 분야 지식과 경험 획득에 노력하는 그의 모습 등.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단순한 호사가적 취미로 이 여행을 구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당대 최신의 정밀 기자재를 구입하고 정확한 측정을 토대로 최신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여 자신의 발견과 관찰의 의미를 재구성하였다.
훔볼트의 탐험 의의는 당대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충격의 강도가 두드러진다. 아마존 오지를 자연 다큐를 통해 쉽사리 접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는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요즘으로 치자면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생명을 찾아서 낯선 별로 기약할 수 없는 탐사를 떠나 놀라운 발견을 거듭하고 무사히 귀환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여행 기록을 매순간 세상에 공표하였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여 기록을 남기자는 취지와 함께 자신의 탐험과 발견 성과를 신속하게 드러내고자하는 의도를 지녔다. 당대는 계몽 정신으로 불타오르던 유럽, 따라서 그의 새로운 체험과 모험과 발견은 지적 갈망에 굶주려 있던 당대 지성인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 남미 탐사 도중과 이후 훔볼트의 국제적 명성, 즉 나폴레옹과의 일화, 괴테와의 교유, 제퍼슨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훔볼트는 당대 인식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틀을 넘어서는 사고를 갖고 있기도 하다. 노예 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찬란한 잉카 문명을 파괴해 버린 정복자들에 대한 반감 등.
이 책은 훔볼트의 삶에 대한 전반적 개요를 다루고 있다. 훔볼트의 전기는 아니며, 극적인 탐험기도 아니다.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진지한 연구서도 아니다. 저자는 잊혀진 훔볼트라는 이름을,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듯하다. 저자의 서술은 대체로 평이한 편이다. 자연 다큐의 내레이터 어조에 가깝다.
훔볼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넉넉한 재산이 아니었다면 탐험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건강도 매우 좋았고 풍토병에조차 걸리지 않았다. 운 나쁜 모험가가 알지 못할 병에 걸려, 또는 사고로 생을 달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시절에 5년간 열대지역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녔음에도 끄떡없었음은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의 열정과 집념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기회와 여건이 마련되더라도 당사자의 용기와 결단이 없다면 실행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 책이 이백 년 전 유럽의 한 학자이자 탐험가의 일생과 모험의 내용을 현대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면 단지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훔볼트를 통해서 소중한 꿈과 열정을 잃지 말고,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노력으로 성취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