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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자연과학선집
알렉산더 폰 훔볼트 지음, 정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평점 :
개인적으로 소싯적부터 여행기와 탐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찬삼의 해외 여행기를 비롯하여 리빙스턴, 슈바이처, 헤딘, 아문센 등의 탐험담을 넋을 놓고 읽기도 하였다. 우연히 서점가에서 훔볼트에 대한 신간을 보는 순간 옛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할까.
이 책 자체는 탐험기가 아니다. 훔볼트 자신도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다. 그는 박물학, 자연학 등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탐험을 진행한다. 훔볼트가 18세기 초 수년에 걸쳐 남미대륙을 답사한 후 보고서를 정리하기 전 일종의 요약본 형식으로 발표한 저작이다. 전자는 이론적, 후자는 사실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식물지리학 시론>은 식물지리학의 이론적 개념 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종래의 식물학을 기술식물학으로 부르며, 식물지리학은 “지금으로서는 명칭만 존재하는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일반자연학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학문 분야”(P.3)라고 제기한다. 생소한 분야니만치 식물지리학의 의의에 대한 소개를 더 하고 있다.
“식물지리학은 다양한 기후 환경 아래서 식물을 그 장소와 연관시켜 고찰한다.” (P.3)
“식물지리학은 매우 다양한 식물 형태의 배후에 어떤 원초적 형태가 있는지, 나아가서는 종의 다양성을 진화 또는 퇴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지 같은 문제에 관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 (P.11)
저자는 아메리카와 유럽의 기후, 위도, 고도별 식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식물지리학이 지질학과 정치사나 문화사에 결부시켜 고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해의 심화와 확대를 꾀한다. 특히 식생의 양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민족의 취향이나 독창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지적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성격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것들의 형태가 자아내는 아름다움 속에, 그리고 그것들이 짝이 되어 자아내는 조화와 대조 속에 존재한다.” (P.25)
훔볼트는 다년간의 탐사 결과를 한 장의 커다란 지도로 압축, 요약, 분류하여 글자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열대 지역의 자연도>는 이 지도를 읽기 위한 해설문이다.
“필자는 열대지역이 나타내는 자연 현상의 총체를 태평양 해면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지도에 요약하기를 시도했다.” (P.35)
“그것은 또 필자가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P.36)
저자는 일반자연학의 “진보는 개별적인 연구와 함께 지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나 사상들 모두를 결부시킴으로써 비로소 가능”(P.36)하다고 하여 종합적, 융합적 과학 이해를 제시하며,
자연도의 이해를 통해 상상력과 기쁨을 정신에 나누어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이어서 자연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는데, 지도의 축척비율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 최고봉 침보라소 산의 해발고도 측정치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단면도의 윤곽을 통해 지질 현상을 논하고 지도 안쪽에서는 적도 주변 지역의 식생 지리를 상세히 표현하기 위해 고도대별 식물의 형태에 대응해서 식생도에도 식물군생별 영역을 설정하여 세부적으로 논하고 있다. 특히 기나나무(cinchona)의 분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흥미롭다.
훔볼트의 탐사와 관찰이 이루어진 시기는 19세기 초, 우리는 각종 자연다큐를 통해 열대지방 고산, 특히 킬리만자로의 고도별 식생이 다채로움을 인지하고 있지만 당대의 시대적 인식을 염두에 두며 매우 획기적일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식생뿐만 아니라 기온, 습도 등 폭넓은 지구과학적 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적도 주변지역의 자연도의 목적은 식물지리학상의 고찰에 공헌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연도는 동시에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P.78)
저자는 이하에서 식물지리학 외 일반자연학의 각 분야에서 행해져 온 연구 성과를 14개 항목으로 정리하면서 이 책에서는 간단하게 개요만 언급하고 있다. 해당 항목은 다음과 같다. 기온, 기압, 습도 전기, 하늘의 청도, 빛의 감쇠, 수평굴절률, 대기의 화학조성, 중력의 감소, 비등수 온도, 지질, 설선(雪線), 해상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서식지의 고도로부터 본 동물의 다양성.
대기의 화학조성에서 이미 상식이 된 대기 내 질소 대 산소 비율에 대한 논의가 신기하고, 안데스 산맥의 명칭을 남미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날의 로키 산맥까지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이채롭다. 특히 인디언이 몽골계 인종이고, 아시아에서의 이동설에 대해 당대는 아직 가설단계에 있음을 알려준다.
해설 포함 150여 면에 불과한 소책자에서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전문적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인문 사회학에 비하여 학문적 발전이 빨리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에 있어서랴. 그럼에도 지리학과 지구과학의 학문적 초창기 단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훔볼트의 생생한 육성을 당대적 인식 틀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중간에 낯선 식물종의 이름이 여과 없이 라틴어 학명 그대로 융단 폭격 수준으로 노출되고 있어 이 방면에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