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장기
가모노 조메이 지음, 조기호 옮김 / 제이앤씨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의 삼대 고전수필 문학에 속하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나머지는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와 요시다 켄코의 <쓰레즈레구사>라고 한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1237단의 구성으로 본문만 따지면 100쪽에 미치지 못한다. 내용상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장은 이 책 전체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2장에서 6장까지는 인간세상의 5대 재해를 기술하고, 7장부터 종장은 작자의 소회와 심경을 담고 있다.

 

1장에서 초메이는 흐르는 강물, 물거품, 시드는 나팔꽃, 사라져 버리는 아침 이슬과 같은 어휘의 사용을 통해 인생과 세상사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장의 이런 분위기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관통한다.

 

석가모니의 용어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생은 수많은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온전하고자 하나 세상의 풍파는 끊임없이 나를 뒤흔들어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작가는 수십 년 전을 회상하여 자신과 세상에 충격을 준 다섯 가지 재해를 기술한다. 작가의 눈은 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로 간주한다.

 

안겐 시대의 화재는 집과 재산에 열중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지쇼 시대의 회오리바람은 지옥의 업풍과도 같은 신의 경고가 아니겠는가. 요와 시대의 기근 장에서는 사실적인 기술을 통해 굶주림의 비참함과 참담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인간이란 소수지어(少水之魚) 같은 가련한 존재다. 겐랴쿠 시대의 대지진 또한 인간사의 허무와 탄식을 자아낼 뿐이다. 인재라고 할 수 있는 후쿠와라[후쿠하라] 천도 장면은 급작스런 천도에 대한 세인의 불안과 불평을 진술하고 백성들에 대한 위정자의 자비심 부족을 질타한다. 아울러 귀족사회에서 무사사회로 변해가는 현상을 난세의 전조로 파악하여 우려를 표한다.

 

초메이는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서른 살에 움막을 짓고 쉰 살에 출가하여 심산에서 세상을 등지니 그의 삶도 평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그럭저럭 견뎌내며 살아왔다고 술회한다(27).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염세적 인식이 짙게 배어난다.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음의 불안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5)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27)

 

그는 은거하기 위해 조그만 집을 짓는다. 7단에서 세인의 집짓는 어리석음을 비판한 초메이지만 암자는 단지 방장에 불과한 임시 거처일 뿐이다. 그 좁은 곳에서 작자는 자연을 벗 삼아 나름대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긴다. 자신을 소라게와 물수리에 비유하며, 아무런 걱정 없는 삶.

 

세속의 원망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고 억척스러워하지도 않으며, 그저 한가함 속에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근심 없는 나날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32)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초메이는 이렇게 자부한다.

 

내 한 평생의 즐거움은 선잠을 자고 있는 듯 가볍기 그지없으며,.....” (33)

 

살아 보지 않고 그 누가 이 좋은 기분을 확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이런 마음을 알 리가 없다.” (34)

 

세상을 등지고 출가하여 불도에 뜻을 둔 것은 속세의 번뇌와 집착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가 초암에서의 한가롭고 조용한 생활에 만족하고 집착하는 것은 출가의 진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자문하고 반성하며 아미타불을 염불한다.

 

초메이가 살던 시기는 12~13세기 가마쿠라 막부시절이다. 헤이안시대의 평화는 사라졌지만 아직 분열과 전란의 시기는 본격적으로 도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메이의 글에서 풍기는 무상과 염세의 정조는 상당 부분 개인적 이력과 체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다섯 가지 재해는 인간사에서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는 위험이 아닌가.

 

세상은 그가 기대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신관의 직책도, 와카 시인으로서의 세속적 명성도. 세속에 실망하고 은둔자로서의 삶을 택하였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은자의 삶은 겉보기만큼 기실 그럴 듯하지 않다. 고사리와 풀뿌리를 캐며 연명하는 삶은 오히려 비참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속의 욕망을 덜어내자 심경은 평안을 얻는다. 높고 깊은 산 속에서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보니 진세에서의 삶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 속에서 여전히 이전투구하며 악다구니하는 사람들이 가련하게 생각된다.

 

사방 한 장 정도의 초옥이면 충분히 몸을 쉴 수 있고, 재화와 지위를 구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고 눈치를 보며 마음을 졸일 필요 없이 그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피었다 사라지는 물거품과도 같은 헛된 욕망에 연연해하는가. 그저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소박함을 즐길 따름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초메이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후 수백 년간의 전국시대라는 일대 혼란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도덕이 초개보다 못하게 취급받으니 그만큼 초메이가 보여준 탈속의 정서가 가슴 가득 다가왔으리라.

 

* 옮긴이는 첫머리에 자신의 일본시절 개인적 기념사진을 여러 장 수록하고 있으며, 머리말도 사적 소감이 장황하다. 더구나 백 쪽 남짓한 해제는 개인적 감상과 작품과 무관한 소견으로 상당한 분량이 채워져 있다. 특히 근래의 자연 재해와 노무현정권의 수도이전의 시시콜콜한 사실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이 작품 이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부득이다. 좋은 작품이지만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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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마 2014-08-1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광보건대학교 교수. 일본어문학 담당.
무상감과 '죽음'의식, 장송의례 등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