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작가 정유정 인생의 일대 전환점이 분명하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작가는 3년 동안 필력을 쏟아 부으면서 ‘어떻게’가 아닌 ‘무엇’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는 굳이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이 따라붙지 않더라도 매우 흥미진진한 소설로 이렇게 우리 앞에 나왔다.
심사평 중 “사건의 개연성이나 리얼리티”에 대한 의문은 잠시 제쳐두자. 작가가 리얼리즘에 입각해서 글을 쓰겠다는 선서를 하지는 않았으니. 그의 후작 중 <7년의 밤>은 한층 처절한 리얼리즘적 허구를 구현하였으니 오히려 정유정의 작품 세계의 중요한 특성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이 아닌 사건과 행동에 무게중심을 놓고 여지를 주지 않고 파상적으로 몰아붙이는 저돌적 전개.
이 작품은 로드 소설이다. 열다섯 살 소년과 소녀가 낯선 할아버지와 개 한 마리와 함께 수원 옆 Y읍에서 광주를 거쳐 임자도 옆 안개섬까지 이르는 여정과 도중에 발생한 사건이 핵심적 스토리라인이다. 5명의 사람과 동물은 제각각 다른 동기와 목적을 숨기고 그룹을 이루고 있으며 더구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 하니 여행길이 순탄할 리 없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이다. 승주와 준호, 정아는 모두 부모와의 관계에서 갈등과 상처를 입은 청소년들이다. 아빠를 잃은 준호, 아빠를 잃는 편이 차라리 더 나았을 정아는 외면적으로 상처가 드러나지만, 부모가 막강한 재력의 소유자인 승주는 극성스러운 엄마로 인해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갈등을 지닌다. 여행과 고생을 함께 겪으며 아웅다웅하던 그들은 서서히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배려의 염을 품게 된다. 담금질이 쇠를 강하게 하듯 험한 여로는 아이들을 내면적으로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 또 한 명을 빼놓을 수 없으니 할아버지다. 걸쭉한 남도 방언을 뱉어내는 정체불명의 할아버지는 이들의 남도행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도 한 점 의혹을 남긴다. 후반에 드러나는 참혹한 개인사는 개인적 수준의 아픔을 넘어서 시대적, 제도적 차원의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1980년대의 짙은 시대적 그림자를 작품 전반에 드리우고 있으니 준호의 남도행도, 아빠의 실종도, 할아버지가 딸을 잃게 되는 계기도, 일행이 광주를 비롯한 행로에서 계속적으로 맞닥뜨리는 위험도 광주 항쟁의 연장선상이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너무 무겁고 어두운 제재와 배경을 도입한 것은 아닌가 우려되면서도 한편으로 주요 인물들이 청소년이라고 해서 굳이 청소년 소설이라고 치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작가는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의도적으로 작품에 경쾌하고 해학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분위기를 좀 더 밝고 가볍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준호와 승주의 다툼, 할아버지의 걸쭉한 입담과 행동, 루스벨트와 준호 사이의 어처구니없는 일화 등등. 투철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지니며 제법 머리회전도 빠른 준호가 루스벨트를 포함한 일행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겪는 고초와 되씹는 자조는 그래서 독자에게 소량의 동정심과 다량의 웃음을 제공한다.
“루스벨트는 발성 연습을 하듯 목을 길게 빼고 짖었다. 선물이야. 나는 또 한 번 심한 상처를 받았다. 넌, 내가 이걸 기쁘게 주워 먹을 거라 믿는단 말이지? 그것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개뼈다귀 같은 선물이었다.” (P.159)
“루스벨트는 신나게 구령을 붙였다. 컹, 컹, 컹! 개 소리를 듣자 타령이 절로 나왔다. 중대 임무를 부여받고 길을 떠난 거물 김준호가 개 소리에 발맞춰 뛰며 수레나 밀ㅇ야 하다니. 무슨 이런 개소리 같은 일이 다 있는가 말이다.” (P.287)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가가 어떤 심경과 자세로 이 작품을 썼을까 상상해 본다. 그것은 처절한 자기부정과 각성에서 비롯하였다. “폼 나게 쓰고 싶다는 ‘어떻게’에 대한 집착은 나를 궁지로 몰고 갔다......머릿속의 ‘무엇들’은 죄 사라져 버렸다.”(P.388).
작가는 펜이 이끄는 대로 조금씩 전진해간다. 자칫 진지하거나 무거워질만한 요소는 철저히 다듬는다. 이야기는 최대한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으로 터무니없을 것 같은 모험적 사건들-철교 횡단과 따이한 농원 등-도 삽입한다. 또래 청소년들이라면 공감할 성적 요소들 살짝 터치한다. 독자 못지않게 작가도 쓰는 내내 왠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최근 들어서 소설의 이야기적 재미에 물씬 빠져든 경우가 과연 있었던가. 제아무리 소설이 다양한 가면과 치장을 하더라도 허구이며 이야기라는 본원적 태생을 외면할 수는 없으리라. 이 점을 간혹 작가들이 놓치고 새롭고 현학적인 기법과 언설에 몰두하는 우를 범한다. 그런 스타일에 적합한 작가들도 물론 있지만 자기 스타일을 잃고 유행에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점에서 작가 정유정은 현명하다. 그의 성공적인 후작들이 여실히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