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랜포드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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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의 제인 오스틴이라 불리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확실히 오스틴 풍이 느껴지는데 개인적 그리고 시대적 차이가 미묘하며 색다른 풍미를 자아낸다. 제인 오스틴의 스타일을 은근한 유머로 표현한다면 개스켈은 직설적인 개그에 보다 가깝다. 독자의 웃음과 재미를 끌어내는 방식이 문체와 표현에서 보다 노골적이다. 자 이런 재밌는 대목이 있는데 한 번 웃어주지 않겠어요? 라고.

 

독자는 <크랜포드>에서 19세기 중반의 대영제국 시절, 시골의 하층 귀족과 중류층들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글쓰기 소재가 가정과 연애 등 너무 미시적인 게 아닌가하는 비판가라면 개스켈을 앞두고는 아예 넌더리를 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일상사의 자잘한 행위들이 지칠 줄 모르고 작가의 손에서 독자에게로 전달된다. 과연 이 정도까지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세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더구나 영국인도 유럽인도 아닌 일개 동양인이 말이다.

 

작품의 구성은 화자인 메리 스미스 양의 시각을 통해 본 크랜포드 마을의 인물군상들의 삶과 사건들이 열여섯 개의 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화자는 크랜포드 주민은 아니지만 가장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매티 양의 손아래 친척이자 친밀한 관계로 자주 방문하여 머무를 수 있는 인물이다. 관찰자로서는 적격자라고 하겠다.

 

크랜포드 마을은 여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최고 지위는 귀족인 제미슨 부인이 누리고 있지만 사실상의 지도자는 매티 양의 언니인 젠킨스 양이다. 잠시 캡틴 브라운이 등장하여 호각세를 이루지만 그와 젠킨스 양이 잇달아 세상을 뜬 후 사건의 중심은 곧바로 매티 양으로 넘어간다. 사실 여기서 OOO 양하면, 결혼을 하지 않은 미스(Miss)의 개념인데 언뜻 생각되는 것과 같은 젊은 아가씨들이 아니다. 가장 젊은 축에 드는 화자마저도 대략 중년으로 추정되며 대부분 오,육십대의 어찌 보면 할머니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매티 양은 작품 내내 일관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똑똑하고 과단성 있는 언니에 비해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말수도 적고 세상사에 대해 경험도 부족하다. 사소한 일에도 결정을 못 내려 갈팡질팡하기 일쑤며 아랫사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쩔쩔매기도 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결혼의 기억을 망각하지 못하고 상처와 추억에 전전긍긍하는 딱한 인물이기도 하다. 즉 순진무구하고 착하기만 초로의 할머니라고 하는 게 딱 어울린다.

 

매티 양과 함께 마을의 사교 클럽을 구성하는 인물들이 폴 양과 포레스터 부인, 후반에 등장하여 파격과 재미를 마을에 안겨주는 레이디 그렌마이어(의사인 평민 호긴스와 재혼하여 호긴스 부인으로 신분 하락을 스스로 선택한다) 등이 있는데, 이들의 일상생활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고리타분하지만 나름 진지하고 심각하며 고상한 예의범절과 관습의 거미줄로 세세하게 얽매여있다. 그네들에게는 정해진 예법의 틀을 무시하고 깨뜨리는 인물이야말로 몰상식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행동으로 인식되므로.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고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그들에게 주된 관심은 생계와 생활이 아니다. 비록 넉넉하지 못한 형편일지라도 겉으로는 절대 내색하지 않으며 알더라도 모르는 척 외면해주는 게 그네들의 미덕이다. 그래서 모임에 나갈 때 입을 옷과 모자의 패션을 고르는 일이 중대 관심사가 되며, 사교모임과 파티에서 불러야 하는 호칭과 현관에서의 영접 예절, 음식서빙 방식이 간과할 수 없는 화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내내 계속된다면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당대의 (특정한 한 유형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 평범한 대중 소설로 말이다. 그렇다면 제인 오스틴을 빗댄 평가는 잘못된 허명(虛名)이란 말인가?

 

후반부에서 주인공 매티 양은 전 재산을 투자한 은행의 파산으로 경제적으로 영락하게 된다.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말이다. 이때 친구들이 몰래 기부형식으로 그녀를 돕기 위하여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대목은 감동적이다. 게다가 어릴 적 헤어졌던 동생 피터 씨가 귀국하게 되어 그야말로 새옹지마의 인생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게 해피엔딩으로 매조지하는 것 또한 제인 오스틴의 주특기가 아니던가!

 

제인 오스틴은 젊은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을 소재로 하여 당대인의 삶의 단면을 반짝반짝 넘치는 재치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간이 경과한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비록 생활양식은 달라졌지만 오스틴이 제기한 인물들의 행동과 가치관이 빚어내는 고민과 삶의 모습은 여전히 유효하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작품 성향과 세계를 이 한 편의 소설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남녀 간의 관계보다도 좀 더 시야를 넓혀서 마을 사람들 개개인에 동등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네들의 다양하며 아기자기한 삶들이 부딪쳐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뿌려주는 가운데 슬픔과 기쁨이 어울려 삶의 각 단면을 구성한다. 그러면서 삶은 굴러가는 것 아니겠는가. 제인 오스틴과 마찬가지로 개스켈 또한 사람이 선하고 바르며 따뜻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는 매티 양을 끝내 저버리지 않는 신의를 지킨다.

 

작가가 살던 시대에 이러한 삶의 장면은 보편적인 동시에 서서히 스러지는 옛 영화의 자취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산업혁명의 파고는 도시화와 기계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빈민층들의 참혹한 삶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작가가 찰스 디킨스와 친분이 깊었음을 상기해보라!) 좋았던 옛 시절 (belle epoch)의 아름다운 미덕들, 그것은 이미 도시에서는 찾기 힘들게 되었고 크랜포드 같은 시골에나 겨우 숨 쉬고 있을 정도이다. 작가는 사라져가는 선인들의 여유롭고 따뜻하며 예의가 갖추어진 인정과 문화를 동시대인과 후대인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문명화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번 망실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소중한 무언가를 간단히 버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산업화와 도시화가 극적으로 구현된 현대사회의 우리 또한 무관한 남의 나라 옛이야기를 보듯 무심하게 여기기 어려울 것이다. 크랜포드 작은 마을의 잔잔하며 소소한 이야기가 더더욱 마음을 울리는 연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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