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무렵 무라사키
히구치 이치요 지음, 박영선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수록 작품>

1. 매미

2. 십삼야

3. 키재기

4. 제 아이는 말이죠

5. 해질 무렵 무라사키

 

옮긴이와 출판사의 노력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거의 십년 전에 국내에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이치요의 소설집 두 권과 일기 한 권을 동시에 출간해 내놓다니. 이야말로 시대를 앞선 혜안이 아니겠는가. 수록 작품 5편 중에 <십삼야><키재기>를 제외한 세 편을 일독하기 위해 이 책을 꺼내들었다. 곁들여 상기 두 작품을 재독하는 즐거움도 나쁘지 않다.

 

<십삼야><키재기>에 대한 감상은 을유문화사 판에 서술한 소감이 여전히 유효하며 여기에는 미비한 점을 첨언한다. <십삼야>에서 작가는 애정 없는 결혼의 비극적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요는 이러한 선택이 당사자 개인의 자율적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통적 가족관계의 역학과 자식과 가족에 대한 내적 윤리의식이 여기로 이끌고 벗어나지 못하도록 꽉 짜인 틀을 구축하고 있다. 남편이 아니고 원수로 생각되는 하라다의 사모님이라는 허울을 벗어던지길 원하는 세키는 견고한 그물에 포위되어 현실에 주저앉는다.

 

아이를 불쌍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P.47)

 

아아, 나 혼자 내 멋대로 남의 출세 길을 막을 순 없다. 돌아가야 하나, 돌아가야만 하나. 그렇게 비인간적인 사람 곁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 냉랭하고, 비정한 남편이 있는 집으로,,,,,,” (P.44)

 

하지만 부모를 위해, 또 동생을 위해, 타로도 있지 않니, 여태까지 참고 살았는데 앞으로도 못 해나갈 것이 뭐가 있니?” (P.61)

 

앞으로 그녀는 남은 생을 허위적허위적 헤쳐 나가게 될 것이다. 하라다의 처로 남은 세키는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것이 모두의 소망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이 일본 근대에도 여전한 여성 억압적 가치관과 질서 체계라는 점을 작가는 모두에게 명백히 알리고 있다.

 

그저 제가 죽은 셈치고 살면 풍파도 일어나지 않고 아이도 부모 손에 자랄 수 있지요.” (P.61)

 

<키재기>의 종반부를 특징짓는 사건은 미도리의 일변한 태도에 있다. 이전까지의 구김 없고 자유분방하던 미도리는 어느 날 시마다 머리를 하고 그토록 친하던 쇼타에게도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열네 살 아이는 얌전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소녀가 되었다. 도대체 미도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어제까지의 미도리로서는 전혀 알지도 못할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 부끄러움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P.155)

 

요 며칠 동안 일어난 일 때문에 자신이 자신 같지 않았다. 그저 뭐랄 것도 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P.160)

 

을유문화사 판의 해설에 따르면 두 가지 견해가 두드러진다. 초경을 겪은 데 따른 심신의 충격이라는 설과, 미도리 언니의 직업과 가족들이 사는 곳이 유곽이니만치 어린 소녀가 소위 머리를 얹었다는 설이다. 개인적으로 미도리의 나이로 보아 후자의 추정은 과도하게 인식된다. 오히려 요즘에 비해 예전에는 초경이 다소 늦은 점을 감안한다면 전자가 타당성이 높다. 소년의 첫 몽정, 소녀의 초경은 모두 당혹스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우리들 자신의 기억에서 상기해 보자.

 

확실한 것은 이 사건으로 인해 미도리는 성적 자각을 하게 되어 더 이상 또래의 소년들과 어울리기를 원치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미도리의 앞날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이제부터는 여성으로서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뇨도 스님 수행을 하기 위하여 머리를 깎는다. 요시하라 아이들에게 인생의 한 시절이 마무리되고 있다.

 

나머지 세 편은 비교적 소품들이다.

 

<제 아이는 말이죠>는 다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십삼야>와 같이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이 여성 화자의 독백에서 주된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부부 간 불화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화자의 일방적 의심과 딱딱한 언행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생각될 정도다.

 

우울하고 지겹다. 어째서 이런 남편과 인연이 닿아 길고 긴 인생을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지루한 일상. 어처구니없는 인생.” (P.167)

 

파국으로 향하던 이들의 관계에 전환점이 된 것은 아이의 탄생이다. 아이의 방긋거리는 얼굴을 보고 미소 짓고 대화를 시작하는 부부. 이들 가족의 앞날에는 구름이 걷히고 서광이 비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 왠지 께름칙하다. 일방적 희망찬 전망을 비추기에는 그들 사이의 상흔이 너무 깊다. 갈등의 원인이 진정 해소되었는가? 메울 수 없는 갈등과 다툼, 그리고 화해와 미소, 그것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가정 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완성인 <해질 무렵 무라사키>의 여성 화자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의 가정은 외형적으로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한 가지 그녀는 남편에 대해 전혀 애정이 없다. 결혼은 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몰래 만나고 있다.

 

나는 악녀야!” (P.185)

 

악인이라 뭐라 해도 나는 상관없어.” (P.189)

 

남편을 속이고 외간남자를 만나는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는 스스로 당당하다. 이렇게 스스로를 악녀라고 선언한다. 이 작품은 여기에서 멈추는데 작가가 요절하지 않고 마무리를 하였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무척 흥미롭다.

 

여성의 전통적인 이상적 모럴은 정조를 지키는 데 있다. 처녀성을 보전하고 있다가 남편에게 순결을 바친 후 이후로는 절대 외간남자에 눈 돌리지 않는 것. 이것은 엄격한 유가사회의 동양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일부일처제의 기독교 사회도 이를 찬미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순결과 정절을 위해 목숨마저도 아끼지 않는 정신과 행동은 사회적 예찬과 권장 사항이기도 하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악녀가 되어 온갖 비난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매미>는 정신이상이 된 유키코라는 젊은 여성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녀가 정신이상이 된 것은 우에하라의 죽음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는 유키코를 범하려다 실패하고 죄책감으로 자살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사태에 충격을 받고 발작을 일으킨다.

 

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건 유키코가 아무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고민을 너무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지만,......이렇게까지 정조라는 걸 지켜온 것을 가엾게 여겨 주기 바라네.” (P.27)

 

그런데 유키코는 발작 중에 끊임없이 우에하라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이름을 끄적거린다. 잘못한 건 그녀 자신이었다는 외침! 그녀와 우에하라는 무슨 관계인가? 양자가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유키코의 부모가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관계였다면, 이는 단순한 정조유린의 실패 사건이 아닐 수 있다.

 

만약에 (반쵸) 도련님이 없었더라면 아가씨가 이렇게까지 가슴 아프게 되지 않았을 거야......” (P.37)

 

하녀들의 대화에서 얼핏 진상이 드러난다. 유키코는 오빠인 양자로 들어온 반쵸와 앞날이 정해진 상태다. 여기에 우에하라가 등장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과 의무, 내면의 감정과 사회적 질서.

 

우에하라의 의외의 불행한 죽음에 그녀는 매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허물을 벗어 빈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유키코. 그녀의 영혼은 이미 우에하라를 따라 스러졌다. 육신의 외양은 뜰에 굴러다니는 매미 껍데기”(P.35)가 되어 곧 바람에 흩날리게 되리라.

 

이상에 보듯이 비교적 어린 나이임에도 그녀의 통찰력은 심오하다고 일컬어질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관찰하고 드러내고 제기한 사안은 당대의 일본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마주치기 마련인 보편적 질문을 근원적 차원에서 되묻고 있다.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과 결혼의 의의에 대해서. 이것이 백여 년 전에 이십대 초반에 삶과 이별한 한 여성 작가의 단편들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연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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