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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3
다야마 가타이 지음, 오경 옮김 / 소화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표준 판형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책자에 120여면 남짓한 이 중편소설은 일본 근대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일본 자연주의의 본격적인 발흥을 선포함과 아울러 그 성격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대에 이 소설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첫째 요인은 작가 자신의 사적 체험과 상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숨겨진 사상이 통념적 도덕 감정에 어긋나는 성적 감상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의 지위에 기대되는 외면적 역할과 처신, 반면 내면적 감정과 본능은 전혀 상반된 지향을 욕망한다. 부조리한 내외의 갈등 구조가 작품 전개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할 수 있는 소위 사소설은 근대 문학이 출발하는 백여 년 전이라면 매우 예외적이며 두드러지지만 현대에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별다른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유부남 또는 유부녀의 불륜, 남녀 간의 애정 삼각관계 등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여 어린아이들조차 익숙한 상황이다. 소재 선택이나 표현 영역의 확장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떠난다면 현대 독자에게 자칫 소구할 점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요시코와 다나카의 연애를 둘러싼 대립적 인식, 그것을 보수와 근대 간 가치관의 갈등과 충돌로 보는 또 다른 독법도 있지만, 역시 당대 소설에서 상투적으로 드러나 그다지 참신성이 부족하다.
이 소설을 주인공 도키오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의 나이 삼십대 중반으로 어느덧 결혼한 지 8년, 아내는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신혼의 단꿈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그의 아내는 철저히 가정적이어서 작가인 남편과 생활사 이외의 대화나 정서적 교류는 없다. 작가로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 고민 중인 이때 도키오는 문득 존재론적 회의에 빠진다. 즉 나는 무엇이며 왜 사는가?
“자식을 위해 살고 있는 아내는 사는 의미가 있겠지만, 아내를 자식에게 뺏기고, 자식을 아내에게 뺏긴 남편이 어찌 삭막하지 않을 수 있으랴.” (P.76)
“서른 대여섯 살의 남자가 가장 많이 맛보는 생활의 고통, 일에 대한 고민, 성욕으로부터 생기는 불만족 등이 무서운 힘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P.88)
삶의 의욕과 활기를 상실해가고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문득 다가온 갓 스물의 꽃다운 여성. 요시코는 단순히 제자가 아니라 도키오에게 생의 활력과 아름다움을 고취시키는 존재이다. 그런 요시코를 도키오가 사랑하게 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그의 사랑이 실현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사랑과 아쉬움과 질투심과 회한이 휘몰아쳐 그는 끝없는 번민과 고뇌에 빠진다.
그가 자신과 가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그녀를 떠나보내는 선택 외에 달리 없다. 그녀가 떠난 후 그의 일상은 암울한 과거로 회귀한다.
“쓸쓸한 생활, 황량한 생활이 다시 도키오의 집에 찾아왔다. 아이들을 주체 못하여 떠들썩하게 야단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 도키오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P.124)
도키오가 요시코가 머물던 방에 올라가 그녀의 이불을 꺼내는 대목이 소설의 끝장면이다.
“여자의 그리운 머릿기름 냄새와 땀 냄새가 말할 수 없이 도키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요기의 비로드 동정이 눈에 띄게 더러운 곳에 얼굴을 갖다대고, 마음껏 그리운 여자의 냄새를 맡았다.
성욕과 비애와 절망이 홀연히 도키오의 마음을 엄습했다. 도키오는 그 요를 깔고, 요기를 덮고, 차갑고 때묻은 비로드 동정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어두컴컴한 방, 집 밖에는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었다.” (P.126~127)
혹자처럼 중년 남자의 추악한 성욕이라고 매도하지 말자. 사랑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현실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외로운 중년 남성의 처절한 몸짓이 여기에 드러나지 않는가. 이 장면에서 울컥, 짙은 동정의 상념이 배어 나옴은 나 역시 도키오처럼 가정의 안녕과 평온을 위해 개인적 욕구를 희생해야 하는 중년의 동병상련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