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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ㅣ 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7
모리 오가이 지음, 김용기 옮김 / 소화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모리 오가이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럼에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서 언급되지 않는데서 이 작품의 한계를 유추할 수 있다. 1910~1911년 발표된 작품으로서 아직 전기의 문학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 당시 오가이의 문학적 장점은 단정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문장.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말미. 예스러운 멋조차 느껴지는 낭만주의적 분위기, 은연중 배어나오는 따스한 휴머니즘과 봉건질서에 대한 거부감. 그러면서도 기성체제에 편입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과 순응의 심적 태도.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초기작에 두드러지며 중기에까지 이어지는 그의 특질이기도 하다.
극적인 사건 전개와 구성력에 치중하지 않는 스타일을 보건대 그의 성향은 단편소설에 어울리지 장편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의 중·단편을 보면 장편으로 쓰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제재를 다루고 있다. 그는 과장과 허세와 요설을 기피한다.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그는 문장의 잡다한 곁가지를 잘라버리고 핵심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한다.
이 소설은 오가이로서는 독특한 유형에 속한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해설에 따르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자극받아 썼다고 한다.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점에서 언뜻 <기러기>와 유사하지만, 두 작품이 가는 방향은 너무 멀다. 작가가 되기 위하여 상경한 준이치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적 인간관계 및 이성관계를 겪게 된다.
세토와 오무라는 정신적, 도덕적 측면에서 정반대의 인물이다. 세토는 지극히 현실적 인물이다. 의대생인 오무라는 폭넓은 교양과 인간에 깊은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다. 준이치와 오무라 간의 철학적 대화를 보게 되면 이십대 젊은이들답지 않은 노숙한 성찰의 면모가 드러난다. 오무라는 준이치에게 정신적 멘토에 가깝다.
준이치가 마주치는 두 여성, 오유키와 사카이 부인 또한 상대성이 두드러진다. 처녀 대 미망인, 연하 대 연상, 순결 대 방종(내지 성적 자유), 수줍음 대 당당함, 전통적 대 현대적 등 양자는 대척점에 서 있다. 결혼을 염두에 두고 진지한 만남을 가진다면 응당 오유키를 택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선(善)을 지향해야 마땅함을 인식하지만, 악과 부패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지 못한다. 팜므 파탈에의 경도와 파멸이 현실성을 지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준이치 역시 사카이 부인의 눈을 외면하지 못한다.
준이치가 작가를 꿈꾸는 만큼 나쓰메 소세키를 위시한 당대의 문인들이 실명 내지 가명으로 등장하고 언급된다. 모리 오가이조차 준이치에게서 부정적으로 비평받는 점이 흥미롭다. 비록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준이치의 눈을 통해 본 문학계에 대한 인식은 작가 자신의 견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당대 문학사조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자신은 동의하지 않던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전개는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개인의 인생관 내지 세계관 형성에 관한 의론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불가피하게 서구의 개인주의의 유입을 동반하였다. 집단문화와 의식이 팽배한 전통 일본사회에서 개인주의는 자칫 사회악으로 치부되기 쉽다. 반면 진정한 개인주의의 발흥 없이는 근대화는 공염불이다. 작중 소설가 후세키가 월례 문학회에서 강연하는 주제는 입센의 개인주의다. 준이치와 오무라가 열중하여 <파랑새> 작품을 분석하면서 토론을 하는 주제도 이기주의로 매도되기 쉬운 개인주의에 대한 것이며, 특히 오무라는 이타적 개인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여전히 일본 사회를 감싸고 있는 집단주의에 대한 오가이의 비판이라고 하겠다.
준이치는 욕망의 발로에 따라 동정을 잃는다. 그는 사카이 부인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대우받길 원하지만 부인에게 있어 준이치는 잠시 호기심을 안겨준 청년에 불과하다. 합치할 수 없는 두 남녀 사이의 결별은 불가피적으로 임박해진다. 사랑 없는 육욕의 만족, 찰나가 지나면 여운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청년은 가족이라는 온실을 떠나 세상에 직면한 순간부터 현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창문을 통해 바라 본 환상은 덧없이 깨지고 만다. 안온한 껍질이 깨지는 순간의 의미는 개개인마다 동일하지는 않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만 비로소 소년은 청년이 되며, 청년은 참으로 성인이 될 수 있음이다.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영원한 피터 팬과 오스카로 남는 것뿐이다.
준이치는 하코네를 떠난다. 하숙집이 있는 도쿄로 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주저와 퇴행의 길이 아니다. 하코네의 사카이 부인, 도쿄의 세타와 뭇 현실, 이들의 실체를 준이치는 이미 경험하고 발견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준이치는 아니다. 그는 글을 쓰고 작가가 될 터이지만 상경하던 시기에 품었던 상념과는 다른 형식, 내용, 차원의 글을 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