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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실 ㅣ 기담문학 고딕총서 7
이즈미 교카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수록작>
1. 고야성(高野聖)
2. 외과실
3. 눈썹 없는 혼령
4. 띠가 난 들판
2007년 이즈미 교카 작품집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책이다. ‘기담문학 고딕총서’의 일편으로 나왔으므로 작가의 삼백여 편 중 괴기성과 환상성이 두드러진 작품을 골랐다. 그런 면에서 <외과실>은 기획의도에 썩 부합하지는 않는다.
<고야성(高野聖)>은 문학동네 임태균 번역본에 대한 졸평을 참조 바라며 건너뛴다.
<외과실>은 <야행순사>와 더불어 1895년에 발표된 교카의 사실상 문단 데뷔작이다. 매우 짤막한 작품으로서 과감한 생략과 함축적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완독 후에도 뉘앙스가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초기작은 관념소설로 평가받는다. 주인공의 직무와 윤리 등의 관념이 사랑과 현실 등과 충돌을 일으켜 결국 주인공의 죽음 또는 파멸로 이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외과의사 다카미네와 백작부인은 젊은 시절 공원에서 우연히 단 한번 스쳐지나간 적 밖에 없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말과 같이 한 번의 조우만으로 그들의 내심에는 상대에 대한 강한 연모의 정이 뿌리박혔다. 자식과 남편이 있음에도 연모의 마음을 놓지 않은 백작부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내밀한 언사를 드러낼까봐 절체절명의 수술에서 마취를 거부한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 (백작부인)
“잊지 않았습니다.” (다카미네)
두 사람의 세상에는 오직 둘만이 존재하였다.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은 안중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날 세상을 떠났다.
<띠가 난 들판>은 1911년 중기의 작품이다. 수년 전 시리즈로 나왔던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영화가 있다. 극중 주인공은 운명에 의해 죽음이 예정되었다. 제아무리 회피하고 저항하려고 발버둥 쳐 봤자 맹목적인 운명의 무자비한 힘은 그를 끝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더위에 지쳐 새벽에 깨어난 다다키치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빈집인 뒷집의 여인이 그렇다. 만삭인 그녀는 정원 산책 중 넘어져 사산을 하고 자신도 몸이 불편하게 된다. 이때부터 꽹과리를 치는 약장수 중이 기분 나쁘고 집요하게 그녀 주위를 배회한다, 병원에 실려 갈 때까지. 병원에서는 죽음의 망령이 침대 옆 공중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그녀에게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망령은 잠시 그녀를 떠나는 듯하지만 종내 다시 돌아온다.
“너 참 끈질기구나, …… 우선 다른 데로 가겠다.”
“너, 아무래도 다시 왔어…….”
그 섬뜩한 커다랗고 검은 손은 다다키치 보는 앞에서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다. 여인의 운명은 결국 그리될 것으로 정해졌던 것이었다.
<눈썹 없는 혼령>은 1924년 작으로 후기작 중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서두가 <초롱불 노래>와 마찬가지로 짓펜샤 잇쿠의 <도카이도 도보 여행기>를 인용하며 시작하여 흥미롭다. 주인공 사카이가 나라이에서 묶는 동안 일본의 여관 생활과 문화의 멋과 재미를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들려주고 있다.
사카이와 여관 주방장의 대화는 신비와 기이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의견이나 진배없으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암시다.
“이 심산유곡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의 지혜로는 못 미치지요.”
아무도 없는 여관 별채 목욕탕에서 낯선 여자의 목욕소리가 잇달아 들린다. 방에서 눈썹을 민 낯선 여인의 혼령이 화장을 하는 장면을 비몽사몽간에 목도한다. 이후 소설은 여관 주방장의 이야기로 묘하게 진행된다. 화가의 간통 사건이 벌어지면서 도라지 연못의 눈썹 없는 혼령과, 화가를 찾아온 정부 오츠야의 이미지는 중첩된다. 화장을 마친 오츠야의 모습은 도라지 연못의 여인과 자매간으로 보일 정도로 비슷하다. 두 여인은 화장 후 “어울립니까?”하고 묻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보인다.
여관방에서 사카이가 마주친 것은 도라지 연못의 혼령인가 아니면 마물로 오인 받아 총에 맞은 오츠야의 원혼인가? 전자와 후자는 상이한 존재인가 아니면 동일한 현상의 발현인가? 여기서 작가는 혼령과 여인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뒤엉키게 제시하여 독자를 혼란 속으로 의도적으로 몰고 간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목격한 오츠야와 초롱을 든 주방장 자신이 다가오는 장면과 역시 “어울립니까?”하는 섬뜩한 물음은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독자의 등골마저 오싹 전율하게 만든다.
어쨌든 나름대로 교카의 판타지풍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시기별로 적절히 안분하여 수록작을 고심하여 선별한 투가 역력하다. 하지만 천려일실(千慮一失)! 교카 소개를 위하여 고른 배분에 주력하다 보니 <고야성>을 제외하면 그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성의 소설을 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온라인서점의 서평의 엇갈린 평점은 이를 말해 준다. 출간에 대한 찬사와 작품 선정에 대한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