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혜 - 꽃에서 펼쳐지는 탄생과 소멸의 위대한 생존 드라마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조영선 그림 / 김영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1900년대 이후 마테를링크는 에세이, 특히 자연관찰 부문에 몰두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들은 곤충 3부작 외에 1907년 작인 <꽃의 지혜>이다.

 

목차와 해설, 연보 등을 모두 포함해도 160쪽 밖에 되지 않는 데다 활자와 조판도 여유롭고 원작에 없는 예쁜 꽃그림 삽화도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 실제 글의 분량은 부담 없는 편이다. 아담하고 예쁘장하여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책이니만치 내용을 외면할 수는 없다. 마테를링크는 꽃을 포함한 식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뜨릴 것을 주문한다.

 

이동이 자유로운 동물에 비해 뿌리로 땅에 천착하여 온 삶을 감내하는 식물의 천형(天刑). 좌절과 포기 대신 삶에의 무한한 본능을 이루기 위하여 끝없는 노력과 지혜를 발휘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근원적 본능은 (개체의) 생존과 (종족의) 번식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고자 분투하며 짝짓기와 출산에 혈안이 되는 현상은 다 연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는 이러한 꽃들의 사례를 소개하여 우리네 인식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우리 인간의 기술적인 영감이라고 해봐야 바로 엊그제 일이지만, 꽃의 재능과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세월을 이어 온 것입니다.” (P.82)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지성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동일한 수준의 희망과 이상을 좇아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P.103)

 

가루받이, 즉 수분(受粉)을 위한 꽃들의 치열하고도 다각적인 의지적 연구와 고안은 식물의 수동성과 정태성이라는 선입견에 철저히 물들어 있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비친다. 그들의 기발하면서 정교하기 그지없는 수분 장치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통발의 기압과 수압으로 조절되는 밸브 장치, 꽃자루를 스스로 끊어버려 삶과 생식을 교환하는 나사말의 수꽃, 비터멜론의 경이적 씨앗 분사력 등 예는 한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작가는 난초를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지혜의 증거로 추천한다. 오르키스 마쿨라타, 피라미드 난초, 카타세툼, 개불알꽃, 두레박난과 같은 난초과 식물의 자세한 수분 전략과 전술을 묘사하는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명료하면서 섬세한 필치로 기술된 글을 읽자면 파브르의 곤충 못지않은 감명을 느끼게 되고, 과연 식물들도 이성과 지혜를 갖춘 존재라는 주장에 무작정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테를링크가 심혈을 기울여 꽃의 지혜를 설파하는 이유는 마지막 장에 드러난다. 바로 인간의 참다운 지혜에 대한 논지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과 꽃들이 살아가도록 하는 본질적 기운과 원리는 동일함을 발견하고 자만을 벗어던지고 더 겸손해지자고 말이다.

 

“꽃과 우리가 서로 닮았고, 꽃이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 역시 가지고 있으며, 꽃의 방법과 습성과 관심과 성향과 욕망이 우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 우리가 억누를 수 없는 본능으로 희구하는 모든 것은 저절로 그 당위성을 확보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삶의 곳곳에 꽃의 지혜가 만개할진대, 어떻게 그 삶이 악과 죽음, 어둠과 허무에 대한 승리의 몸짓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P.142)

 

이 책의 미덕은 반복하자면 간결한 가운데 꽃들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알려지지 않은 신기한 사례들을 독자에게 소개하여 새삼스레 관심의 조명을 비추는 데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지금부터 근대 자본주의가 정점을 향해 달음박질치던 백 년 전임을 염두에 두면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고 인간 위주의 관점을 탈피하고 자연에 눈 돌릴 것을 주창한 작가의 선구적 혜안에 탄복할 따름이다. 그것도 거창하고 단조로운 논설이 아니라 꽃을 제재로 한 얄팍한 에세이를 통해서.

 

여기에 더해서 원작에 없는 수채화풍의 아름답고 세밀한 꽃 그림들은 글을 통해서는 막막할 수도 있었던 꽃들을 눈앞에 생생하게 살려내어 책에 한층 격조를 높이고 있다. 이는 꽃 사진을 게재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한마디로 여러 면에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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