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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호의 모험 - 황금양피를 찾아 떠난 그리스 신화의 영웅 55인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지음, 김원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는 기원전 2세기의 인물이다. 희랍어로 씌어진 서사시로서 원문은 총 5,385행으로 <일리아스>의 3분의 1 분량이라고 한다. 희랍 원전을 번역하였는데 내용 전달하여 주력하여 현대적 산문형식을 택하였다. 따라서 장중한 고전 운문체의 느낌 대신 에피소드가 곁들여진 한바탕 모험담의 인상이 강하다. 이는 옮긴이의 의도라고 하겠는데 조금이나마 더 독자에게 친숙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2005년 이 번역본에 이어 2010년에 강대진 번역본도 출간되었는데, 책소개에 따르면 보다 원전에 충실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종의 레퍼런스로 삼기 위한 목적이리라. 이 김원익 번역본의 장점은 먼저 서두에 30여 면에 달하는 충실한 해설에 있다. 작가에 대하여, 작품에 대하여 아무래도 생소한 이들을 위하여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희랍 신화의 한 영역에 포괄된다. 황금양피를 찾기 위한 모험은 아폴로니오스의 창작이 아니다. 희랍 신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작품 해독에 어려움을 느끼고 지속적 흥미를 갖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지도다! 신화적이거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저작에서는 지도는 필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막연히 낯선 지명을 쭉 나열하면서 전개되는 사건 및 활동들을 막무가내로 쏟아놓는 것은 독자에 대한 실례다. 충실한 지도는 직관적 내용 이해와 심화 인식에 크게 유용할뿐더러 암흑의 바다에서 독자를 구조하는 효과적 수단이다. 아르고호의 원정로를 따라 희랍과 흑해 주변, 그리고 이탈리아와 지중해 전도는 아르고호 모험의 스케일과 고난의 깊이를 생생하게 입증한다. 실로 아르고호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3개 대륙에 걸친 모험을 떠난 것이다.
55인의 영웅들이 가져오고자 하는 황금양피의 정체가 궁금하다. 무슨 대단한 보물이기에 온 희랍의 영웅들이 집결하여 그 물건을 찾고자 온갖 고난을 무릅쓰는 모험을 감행할 정도인가. 황금양은 계모에게 곤경당하는 프릭소스 남매를 구하기 위하여 제우스가 보내준 신성한 동물이며, 나중에 제물로 바쳐졌다. 그 양피는 프릭소스가 자신을 거두어 준 콜키스의 아이에테스 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백번 생각해 보아도 황금양피는 희랍의 것이 아니며 타국의 것을 무력을 불사하면서까지 가져가고자 하는 것은 의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더욱이 양피에 무슨 비상한 능력이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왕권, 태양 또는 부의 상징 등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존재하는데 신빙성이 높지 않다.
원정대의 대장은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이며, 그는 헤라 여신의 각별한 총애를 받는 영웅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그를 포함한 소위 영웅들이 정말 영웅이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여색에 쉽게 빠지고(렘노스 섬을 봐라) 위험과 난관 앞에서는 사기가 축 쳐져서 소심하게 구는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인간적이기조차 하다. 특히 아이에테스를 두려워하여 쩔쩔매며 비겁하게 처신하는 장면은 가관이다. 작가도 몇몇 대목에서 이아손을 교활하다고 표현한다.
메데이아의 사랑과 도움이 없었다면 아르고 호의 모험은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솔직히 이아손의 업적 보다 메데이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청동 황소의 불길도 무력화시키고, 뱀의 이빨을 뿌려 땅에서 솟아나온 병사들을 물리친 것도 모두 메데이아의 마법과 조언 덕택이다. 황금양피를 지키는 용을 잠재운 것도 메데이아였다. 메데이아가 아버지와 동족, 그리고 조국을 버리고 이아손을 따라나선 것은 에로스의 화살이 불러일으킨 사랑의 힘이다. 아폴로니오스는 특히 메데이아의 사랑의 심리 묘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후에 메데이아는 희랍 신화에서 제일가는 악녀로 지탄받는다. 그녀는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오빠를 죽였으며, 사랑의 배신에 절망하여 자신의 두 아들을 죽였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메데이아에게 이아손의 배신은 감내할 수 없는 분노와 치욕과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아손 보다는 메데이아를 탓하는 것은 희랍신화의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구조에 기인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 작품에서는 이아손과 메데이아의 혼인까지만 내용이 전개된다.
지도의 원정로를 짚어가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아르고 호의 모험담이 여정의 길이를 감안할 때 매우 불균형하게 수록되었다는 점이다. 원정 여정은 이렇다. 희랍 중부의 이올코스를 출발한 아르고 호는 헬레스폰토스와 보스포로스를 지나서 흑해에 진입한다. 아나톨리아 반도 북부 해안을 따라서 동진하여 흑해 동안의 콜키스에 도착한다. 귀로는 콜키스에서 아나톨리아 반도 해안 중간까지는 동일하다. 이후 흑해를 가로질러 이스트로스강[다뉴브강] 하구로 진입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아드리아해로 빠져 나온다. 다시 바람에 밀려 지중해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탈리아의 에리다노스강[포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 알프스의 호수에서 프랑스의 로다노스강[론강]을 통해 지중해로 나온다. 이후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거쳐 희랍 서안에 다가가지만 역시 바람에 밀려 아프리카의 리비아로 상륙하여 고생하다가 간신히 신의 도움으로 출발지 이올코스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두 여로를 비교해보자. 길이와 난이도를 감안할 때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비희랍은 그리 관심이 없는 듯 간략한 분량만을 기술에 할애하고 있다.
솔직히 아르고 호보다도 더 대단하고 놀라움을 안겨준 것은 아이에테스의 추격대다. 일대는 아르고 호를 따라서 이스트로스강을 앞질러 가기도 하였으며, 다른 일대는 보스포로스를 거쳐 희랍 근해에서 아르고 호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이로써 콜키스의 아이에테스의 강대한 위세와 막강한 권위를 짐작케 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고 호는 귀환하였고 영웅들도 일부 손실을 겪었지만 임무를 완수하였다. 제우스와 헤라의 분노는 가라앉았고 그들의 정의는 회복되었다. 이 시점에서 묻고 싶다. 아르고 호 모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었는지를. 그들이 겪고 무릅쓰고 헤쳐 나온 위험과 고난이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단순한 모험심에서 그들이 배를 띄운 것은 아니다. 지리상의 발견을 위한 것도 더더욱 아니다.
희랍인들은 인간의 불가측하고 불가해한 운명을 신의 뜻이라고 여겼다.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위력도 신의 행위라고 수용하였다. 신이 먼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필요에 의해서 신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도 있다. 운명과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신의 의지 앞에서 인간-제아무리 위대한 영웅일지라도-이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처럼.
친절한 돌리오네스인들과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이게 되어 이아손은 키지코스 왕의 가슴에 창을 꽂았다. 이 대목에서 작가의 탄식을 보자.
“인간은 절대로 이런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커다란 운명의 그물이 쳐져 있다. 키지코스도 영웅들과 싸우던 그날 밤 바로 그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P.98)
메데이아가 자신을 추격한 오빠 압시르코스를 죽이기 위하여 계책을 꾸미는 장면에서 아폴로니오스는 이렇게 외친다.
“무정한 에로스여, 당신은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뇌와 증오의 씨앗을 뿌리십니까! 당신으로부터 끔찍한 불화와 탄식과 불평뿐 아니라, 다른 숱한 고통들로 비롯됩니다.”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