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명탐정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코난 도일 경이 수편의 모험소설을 썼다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더욱이 후대에 지속적 영향과 자극을 주어 마이클 크라이튼은 동명의 소설을 썼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크라이튼의 작품을 토대로 유명한 <쥐라기 공원>을 제작하였다. 20세기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셜록 홈즈에 못지않았던 셈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소설은 사실상 매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르 특성 상 사실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독자들은 작가가 제시하고 인물들이 겪는 모험과 탐험이 어느 정도 그럴 듯하다고 여겨야 한다. 순전한 공상 내지 상상의 소산이라면 환상 내지 백일몽으로 치부해 버리기 쉽다. 게다가 소설로서의 요건상 문학적 상상력은 필수적이다. 사실성과 상상력이 인절미에 떡고물을 묻히듯 적당하게 어울려 있어야 독자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재미는 대중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순수문학도 비록 의미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재미 가 미흡해서는 박물관의 유물이나 박제가 되고 만다. 당대 및 후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생생하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몰입도는 이처럼 중요하다.

 

남미 아마존 강 상류 유역 어딘가로 설정한 지리적 배경은 현시점에서 보면 신빙성도 떨어지고 시대착오적이다. 코난 도일이 이 작품을 발표한 게 1912년, 이미 백 년 전이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여 당시의 지리적 인식 수준과 과학적 지식 역량의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점만 유념하면 의외로 상당한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딱 고정시키는 능력이 정말로 탁월하다. 스토리텔러로서 코난 도일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쥐라기 공원>에 익숙한 독자의 시각에 익룡을 제외한 육지 공룡은 정작 초식공룡 이구아노돈과 스테고사우루스만 등장하여 심심하기는 하다. 커다란 두꺼비 같은 무시무시한 정체모를 공룡류가 등장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티라노사우루스나 알로사우루스, 아니면 벨로시랩터 등은 나오지 않는다.

 

작품 후반부의 주요 사건은 원인류와 현대 인디언 부족 간의 생사를 건 종(種)의 전쟁이다. 인간의 승리로 끝나는 전투의 결말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미묘하다. 진화론에 입각한 우세한 종의 승리에 대한 찬미인지, 아니면 냉소적 희화화일지.

 

“수많은 세대에 걸친 숙원과, 협소한 역사 속에서 펼쳐진 증오와 학살, 박해와 학대의 모든 기억이 하루만에 통째로 불식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인간은 영장(靈長)의 자리에 올랐고, 수인(獸人)들은 자신의 위치를 감수하게 되었다.” (P.260)

 

작품의 내용 외에 명확한 개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협력, 성격과 행동의 뚜렷한 대비 등이 작품에 다채로움과 다이내믹을 더해 준다. 챌린저 교수와 서멀리 교수는 체격과 외모, 성격에서 극명한 대조를 보이지만, 풍부한 학문적 역량을 통해 작품의 과학적 지식 제공에 큰 기여를 한다. 록스턴 경은 탐험단의 실질적 대장이라고 할 정도로, 학문적 영역을 제외한 분야에서 그의 존재와 역할이 없었더라면 탐험단은 진작에 괴멸되었을 정도다. 그의 거의 완벽하다시피 한 (사냥과 스포츠 등에서) 역량은 오히려 비현실적이기조차 하다. 화자인 멀론은 기자로서 탐험단의 기록을 담당한다. 탐험단의 발견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수인데 직업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미식축구 선수인 그의 신체적 능력 또한 탐험을 위해서는 최적이라고 하겠다.

 

록스턴 경이 가져온 값진 다이아몬드를 분배하며 작가는 독자에게 속편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모험광 록스턴 경은 재차 잃어버린 세계를 방문할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실연당한 멀론은 주저할 필요가 없다. 후대 많은 소설과 영화 등에서 상투적 수법으로 자리 잡게 된 여운을 남기는 장치를 이렇게 코난 도일은 앞서 써먹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내하고 떠나려고 하는 걸까? 극지 정복, 최고봉 등정, 사막 횡단, 심해 탐사 같은 고전적 유형을 떠나서 알프스에서 산악자전거 타기, 스카이다이빙 등의 소위 익스트림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렵다. 하긴 가까이는 테마파크에서 자이로드롭이나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젊은 친구, 바로 그 멋진 위험이야말로 삶의 소금이라고 할 만한 존재야. 그걸 다시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거지. 우리 모두 너무 부드럽고 지루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광활한 황무지와 넓은 공간 만 주어진다면, 나는 언제든지 손에 총을 쥐고 발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나설 용의가 있네.” (P.95)

 

존 록스턴 경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 깊숙이에는 노마드에 대한 갈망이 잠재되어 있다는 주장도 섣불리 부인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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