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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브루스 채트윈 지음, 김훈 옮김 / 현암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남아메리카 대륙,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남부 지역, 그 드넓고 황량한 황무지를 일러 파타고니아라고 칭한다. 빙하의 강력했던 힘의 자취가 역력한 지형, 남극 대륙과 인접한 극단, 그럼에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유일한 해상 통로였던 마젤란 해협을 몰아치는 불순한 일기와 몰아치는 강풍.
문명권에서 머나먼 땅에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과 아울러 호기심을 품는다. 실제 그곳은 어떤 곳일까. 정말로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금단의 지역인지, 그곳에 사람이 산다면 누가 사는지 등등. 그중의 하나가 바로 파타고니아다.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숨겨졌던 파타고니아의 실체를 세상에 드러낸 작품이다. 때는 1970년대 중반, 지금부터 삼십년 전이라는 시간의 격차는 실제 이상으로 넓고도 길다.
이 책은 기행문도, 여행안내서도 아니다. 미지의 자연 풍경과 낯선 문화에 대한 경이와 감탄이 여기에는 없다. 작가는 여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의 눈은 오로지 파타고니아에 사는 사람들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얽힌 자신의 추억에 쏠려있다. 니컬러스 셰익스피어도 길다란 서문에서 이를 지적한다.
파타고니아는 특이한 곳이다. 문명과 모국으로부터의 단절과 고립은 기후적 요인과 결합하여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불안정하게 흔들어놓는다. 그래서 “술꾼은 술을 마시고, 경건한 사람은 기도를 하고,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워지며 가끔은 그 외로움이 치명적인 형태로까지 나아가기도 한다.”(P.10)
파타고니아 거주민들의 무리는 의외로 다채롭다. 그들 대부분은 유럽에서 도망치거나 피난 온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앉은 경우다. 웨일스인, 보어인, 독일인, 이탈리아인 물론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다. 작가에 따르면 그들은 모국과 본토보다도 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이것이야말로 자신과 고향을 잇는 유일한 동아줄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연변의 조선족이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의 마을에서 낯설면서도 낯익은 정서와, 촌스럽고 예스러우면서도 푸근한 감성을 상기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야기 중간에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덧붙여진다. 기인과 범죄자와 추방자들의. 자칭 파타고니아 왕국의 왕위계승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들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의 방랑담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의외의 소득이다. 혁명가 안토니오 소토도 파타고니아 역사의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채트윈은 시간의 엄밀한 흐름에 구애받지 않는다. 목적지를 사전에 정해두고 이를 준수하는 방식이 아니다. 언뜻 발길 닿는 대로 지나가다가 문득 호기심이 생겨난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여정을 이탈하기 일쑤다. 물론 여행의 거시적 목적은 자신이 표명한대로 브론토사우루스로 착각한 대형나무늘보 밀로돈의 추억을 더듬는 것이며, 밀로돈 가죽조각을 할머니에게 선물하였던 친척 찰리 밀워드 선장의 자취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후반부에 밀워드 선장의 삶과 모험담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기 위하여 부러 진실을 외면하거나 조작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파타고니아 지역도 백인의 정복과 착취, 그리고 인디오의 수난과 억압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유럽인들에게 인디오들은 사람과 동물 중간, 때로는 동물 이하의 존재였다. 티에라델푸에고의 ‘붉은 돼지’ 알렉산더 매클레넌의 일화는 적합한 사례다.
“그는 직접 나서서 인디오들을 죽이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동물들이 고통받는 광경을 보면 끔찍이 싫어했다.” (P.247)
지나간 과거사에 불과하다고?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채트윈이 만난 대지주 가문의 영국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인디오를 학살했다는 얘기들은 좀 지나치게 부풀려진 감이 있어요. 여기 인디오는 인디오들 중에서도 아주 열등한 자들이었어요. 아즈텍족이나 잉카족과는 달랐다는 얘깁니다. 문명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전체적으로 보아 그들은 아주 비천한 존재였죠.” (P.291)
채트윈의 이 책이 당대에 커다란 환영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고전으로서 인정받는 연유는 명백하다. 오늘날 이를 읽는 독자도 시간의 간격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진부함과 구태의연함이 배어있지 않다. 그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머나먼 미지에 대한 호기심 충족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극적이면서 개성이 넘치는 삶의 모습. 이 자체로 숨겨진 땅 파타고니아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다. 그리고 세월의 경과에도 그네들의 삶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파타고니아의 자연과 환경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진정한 성취는 파타고니아를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라는 풍경과 아울러 새로운 탐구 방식, 세상의 새로운 측면을 창조해냈다는 점에 있다.”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