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녀 관계의 본질은 사랑과 섹스 중 어디에 가까울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문(愚問)인 줄은 익히 알지만, 사랑과 섹스를 굳이 분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다왕과 류롄의 만남은 자연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류롄은 우다왕의 젊은 육체에 성적 흥미를 가졌다. 우다왕은 류롄의 권력과 위협에 마지못해 굴복하였다. 일개 병사가 사단장의 부인의 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가족의 미래와 운명이 달려있는데.

 

우다왕의 내심에 시골 아내와는 차원이 다른 희고 매끄러운 여체에 대한 미련이 잠복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니 차라리 순전한 육욕과 일탈에 대한 갈망이다. 그래야 우다왕의 무지개가 설명되고 이후 류롄에 대한 우다왕의 헌신적 봉사와 태도가 이해된다.

 

“내심 깊은 곳에서 울리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섬광처럼 한 줄기 무지개가 스쳐 지나갔다.” (P.32)
“그는 단지 그녀를 한 번 힐끗 곁눈질로 쳐다봤을 뿐인데 눈앞에 무지개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더니 눈알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P.34)

 

남성과 여성이 만나서 서로를 알고 사랑을 하게 된 후 섹스로 이어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시에 정상적이다. 또한 누구나가 이상적이라고 상찬해 마지않는다, 최소한 예술이라는 장르에서는.

 

두 주인공의 경우는 반대의 수순을 거친다. 섹스를 통해 사랑이 솟아난다. 사랑이 배제된 순전한 육체적 쾌락을 목적한 성교의 지속성의 결과로서. 물론 인정한다. 일회성 유희가 아닌 반복적, 계속적 유희는 양자 간의 거리를 좁히고 알몸 그대로의 교류는 허식과 위선의 탈을 벗기고 적나라한 본연의 모습을 비쳐준다는 점 말이다.

 

사랑이 항상 현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남녀 관계에서 비극의 단초다. 우다왕과 류렌의 결혼 생활은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사랑이 결핍된 상태였다. 사랑을 막는 장벽은 사회 현실에 존재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이루는 마오쩌뚱 시절의 중국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공산당원과 비당원, 도시와 농촌 거주민 사이에. 그들은 생존을 위해 또는 신분상승을 위해 수단과 처지를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작가는 우다왕과 아내 자오어즈, 우다왕과 류롄의 성(性)을 이렇게 비교한다.
“전자는 성이 실질적인 목적을 위한 육체적 포상이었던 반면, 후자는 아무런 목적없는, 그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의 반응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자는 본능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지만 후자는 영혼의 회귀이자 승화였다.” (P.197)

 

마오쩌둥의 금언 ‘爲人民服務’는 여기서 이중적 의미를 지니면서 작품 전개에 방향타 구실을 하게 된다. 당대 중국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을 드러내면서 아울러 그것이 인간의 본연을 얼마나 저해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이 금언을 깨뜨리는 방편으로서 류롄과 우다왕의 정사를 택하면서 섹스 욕구를 전달하는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는 수단으로 전락한 팻말을 통해 금언, 나아가 시대적 지배적 가치관에 조롱을 퍼붓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결말 처리에 고심한 듯 보인다. 두 사람의 금단적 사랑은 시한부에 불과하다. 사랑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각자 이혼하고 밑바닥에서 새로이 출발할 것인가. 사랑과 현실을 분리하고 감정을 수습하여 각자 현실을 영위할 것인가.

 

우다왕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모범사병이었다. 복무할 인민을 상실한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후 십오 년의 삶은 무의미한 “망연한 공백상태”(P.246)일 뿐이다. 그는 마지막 용기를 낸다. 항상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팻말을 이제 처음으로 류롄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진정한 삶을 되찾고자 하는 마지막 발로. 결과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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