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일랜드
올더스 헉슬리 지음, 송의석 옮김 / 청년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우선 헉슬리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이다. 40여년에 걸친 그의 창작 활동의 종지부를 찍는 소설이니 그것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게다가 유명한 <멋진 신세계>와 대칭을 이루는 유토피아 계열 작품이라면 호기심은 증폭된다.
이러함에도 전작만큼 대중적 명망에서 현저한 약세에 처하는 것은 곧 이 작품의 성격과 한계에 연원한다. 헉슬리는 전작에서 역설적 표현을 통해 과학기술의 맹신과 진보가 가져오는 참담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디스토피아적 관점에서 서술한다. 이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당대에 경각의 종을 크게 울린 것이었다.
이제 그는 유토피아를 그린다. 과학과 문명을 적합한 한도 내에서 최소한만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육체와 내면의 수양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이상향. 자고로 이상향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존재를 시도하더라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현재적으로 영속할 수 없는 유토피아는 따라서 디스토피아다.
빽빽한 활자와 조판으로 450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헉슬리는 전작과는 달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작가의 의욕은 소설에 문학적 요소를 위축시킨다. 전작은 비교적 생생한 인물 창조에 성공하였다. 마르크스와 레니나 및 헬름홀츠는 물론이고 야만인 존과 그의 모친, 소장에 이르기까지 비중의 경중을 막론하고 나름 자기 목소리를 개성껏 표현했다.
여기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기자이자 석유회사의 에이전트인 윌이 금지된 섬 팔라에 진입하여 문자 그대로 보고 듣고 경험한 팔라의 모든 것을 독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때로는 지리하고 현학적인 해설을 곁들여서. 작중 인물은 모두 전형적이다. 윌은 전달자에 불과하다. 한쪽에는 무르간과 모친 라니, 그리고 이웃 랜당의 독재자 디파 장군이 위치한다. 이들은 팔라에 풍부히 매장된 석유자원을 개발하고 과학기술과 현대문명을 도입하려고 한다. 즉 그들은 현재의 팔라를 뒤엎을 의도를 품고 있다. 반대편에는 닥터 로버트와 수쉴라로 대변되는 팔라의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이 자리한다.
헉슬리는 박학과 다식을 겸비한 지적인 작가답게 다채로운 지식을 쏟아놓는다. 그의 지적 편력은 공간적 양의 동서를 포괄하며, 시대적으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횡적으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든다.
가상의 섬 팔라는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에 비정된다. 종교적으로 힌두교와 불교, 무슬림 등이 언급되는 것을 봐서는 말레이나 인도네시아 어디가 해당될 듯싶다. 팔라의 미래는 예견된다. 자유와 행복으로 충만한 작은 섬은 전적으로 오만이자 다른 인류에 대한 고의적인 모욕이므로. (P.93)
헉슬리의 태도는 지극히 반서구적이다. 그의 방대한 논설의 요지는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구 영혼의 토대에 내재된 허위를 비판하는 데 있다. 맹목적 과학과 기술의 숭배로 타락하는 현대인에 대한 냉소가 바닥에 깔려 있다. 한낱 물질문명의 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문명이라면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기여하고 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릇된 본성을 바로잡고 영혼의 본원적 신비를 발견하고 순수성을 지켜나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전작에서 많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그의 지나치게 앞선 주장들은 여전하다. 팔라에서는 가족 제도가 엄격하지 않다. 가정은 확대되고 선택될 수 있으며, 부모의 독점권은 인정받지 못한다. 남녀 간의 자유로운 성적 유희는 여전히 권장된다.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으로 생물학적 우량 형질의 개선을 도모한다. 앞서의 환각제 소마는 여기서 모크샤라는 명칭을 지니고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정신적 쾌락을 얻으려는 용도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체험하고 여행하여 영혼의 순수한 본성을 깨닫고 발견하는 구도적 도구로 승격된 것이다. 신의 존재는 독자성을 상실한다. 신은 인간의 내재적인 존재로서 이해된다.
윌이 모크샤를 복용한 후 체험하는 영적 신비와 합일의 느낌은 마지막 장에 기술되어 있다. 흡사 법열, 열반, 종교적 황홀경 등의 경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각성과 해탈을 하게 되면 인간사와 세상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련의 유토피아 문학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이상사회의 외양과 물질적 요건뿐만 아니라 자유와 행복의 달성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의 내면적 순수성 회복의 불가결성을 작가는 주장한다. 이상사회론으로서는 매우 흥미롭고 뜻 깊다. 반면 문학작품으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많은 작가들이 빠지는 함정이기도 한데, 이상사회를 소개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문학적 감동이라는 소설의, 예술의 기본적 미덕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헉슬리 또한 이를 극복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