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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의 대표적 작품이다. 그 철저한 비관주의와 냉소적 분위기는 확실히 전대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작품을 낳은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과 종전 후의 혼란한 사회적 영향이 일차적 요소에 해당한다. 여기에 만개한 산업자본주의가 가져온 기계적, 획일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 추가된다. 여기까지는 동시대의 예민한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헉슬리는 과학적 낙관주의가 가져온 파멸적 현상에 대한 위기의식과 비판적 경향을 덧붙인다. 작가의 집안 내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과학, 특히 생물학에 대한 지적 토대 위에 이 작품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의 시니컬함은 사람들이 신(神)을 언급할 때 쓰는 호칭에서 드러난다. 더 이상 god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포드(Ford)를 외친다. 포드 자동차 회사의 설립자이며, 소위 포드 시스템의 창시자인 그를. 프로이트(Freud)도 그에 못지않게(심리학적인 일을 언급할 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이상 사회의 열등자의 이름이 마르크스다!
풍자 문학의 특징은 현상을 극단적으로 비틀고 확대하여 미처 인지하지 못했거나 범상하게 넘겨버렸을 현상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데 있다. 헉슬리가 창조한 미래는 고도의 생물학적 계급사회이다. 각 개인은 수정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출생과 양육 단계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획되어 용도에 맞게 성장된다. 계급 수준에 맞는 지적 능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감정적, 심리적 측면에 관한 한 극도의 유아기적 단순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마라는 약물의 복용이 장려되며, 유아 때부터 성적 유희가 권장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남녀 간의 개체적 독자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작중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차갑고 냉소적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들에 이토록 냉정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전반부의 주인공 격인 버나드 마르크스와 레니나 및 헬름홀츠 등도 온도차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래프 상의 다른 궤적을 보이는 인물의 전형이다. 레니나는 전형적인 미래 사회의 인물, 그녀는 체제에 완벽하게 순응하며 어떠한 의구심도 갖지 않는다. 내부적 시각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이토록 한심한 속물로 처리하는 게 부당할 것이다. 버나드와 헬름홀츠는 반대적 유형이다. 헬름홀츠는 과도하게 우월한 신체적, 정신적 능력으로 체제의 정상범위에서 일탈하였다. 버나드는 열등함으로 인해 체제에서 자신을 분리시키게 되었다. 그의 속물 됨은 야만인을 데려온 이후 두드러진다.
야만인 존은 유일하게 긍정적인 인간상이다. 그는 이상 사회에 순응하기를 거부한다. 그가 보기에 이상 사회는 인간다움을 상실한 곳이다. 인간다움은 개체의 독자성을 인정하며, 행복의 갈망에 못지않게 불행을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P.305)
야만인은 이상 사회를 벗어나 독자적 삶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다시금 무자비한 면모를 보인다. 유일한 긍정적 인간을 가차 없이 목매달게 만든다. 미래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 인식의 반영이다.
표제 <멋진 신세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 의거하였다고 한다. 물론 역설적 표현이다. 감탄형이 아닌 의문형으로서.
헉슬리의 염세적 세계관은 지적인 분석과 풍자적 어조의 도움을 받아 현재도 여전히 매력을 지닌다. 너무 흔하여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일거에 날려 버릴 정도로 충격적이면서도 강력한 경고를 우리에게 날린다.
인류의 행복이라는 미명하에서 유전자 조작과 심리적 세뇌는 언제든 표면화될 수 있다. 사회적 안정의 요구는 미디어와 정보 통제 및 조작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낳을 수 있다.
‘멋진 신세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