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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나라 - 불멸의 고전, 캄파넬라가 꿈꾸었던 유토피아
토마소 캄파넬라 지음, 임명방 옮김 / 이가서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이상 사회 또는 이상 국가는 모든 인류의 오랜 염원이다. 양의 동과 서를 막론하고 철학과 사상의 근본이념은 완전한 사회의 요건과 구현 방식에 달려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하고 공자와 맹자, 노자 등이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이상 국가는 현실 정치의 지도 이념인 동시에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타파하는 역할도 수행하였으니 아이러니하다. 무릉도원의 도연명과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가 살다간 시대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는 결코 아니었다.
16세기말과 17세기 전반의 이탈리아 사회는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유럽 각국의 각축장으로 전락되어 있었다. 종교적으로는 종교개혁의 반작용으로 수구적 가톨릭이 위세를 떨치던 무렵이기도 하였다.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경제적 후진성으로 대중들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외세 지배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었다. 이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다 간 이가 바로 캄파넬라다.
캄파넬라에게서 모어의 직접적 영향의 흔적이 발견됨은 일견 당연하다. 근세 서양에서 모어는 근대적 이상국가론의 선구자이다. 종교적 관용, 엄정한 법에 의한 규율, 사유재산제의 부정, 무위도식자에 대한 혐오, 침략전쟁의 금지 등 그들의 이상 국가는 많은 유사점을 공유한다. 캄파넬라는 플라톤의 영향과 점성술의 비교(秘敎)를 더하여 독자적 면모를 드러낸다.
태양의 나라에서 군주를 대신한 최고 지도자는 ‘태양’으로 불리는데, 형이상학자 즉, 철학자로서 정신적·정치적 지도자이다. 플라톤의 철인(哲人) 정치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자본주의의 확대로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현상의 대안으로 사유제를 아래와 같이 부정한다.
“모든 소유관념은 인간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자기 처와 자식을 가지는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바로 여기에 이기주의의 원천이 있다고 해석합니다......인간이 일단 이기주의를 버리게 되면 공공생활에 대한 사랑만 남게 된다는 겁니다.”(P.34)
“공유제는 모든 사람을 부자인 동시에 빈자로 만들고 있는데, 빈자란 그들이 물품의 노예가 아니고 물품이 그들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뜻에서입니다.”(P.53)
이상 국가론은 사유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하여 대체로 공상적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 평가되기도 한다. 위에서 사람이 물품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대목은 마르크스의 물신숭배를 연상시킨다.
캄파넬라는 노동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무위도식하는 귀족층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
“일반직공인을 상놈이라 천대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배우지도 않고 빈들거리며, 많은 하인을 무익한 데만 부려먹음으로써 국가적 손실을 갖다 주는 소위 우리들 사회의 귀족이라 불리는 족속들은 그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P.37~38)
캄파넬라는 공유제를 극한까지 추구하여 부인 공유제도 주장한다. 오늘날의 인간적 정서에 역행하는 의견이지만 특이한 담론으로서 흥미로운 면도 있다.
또 하나의 특이성은 점성학적 배경에도 존재한다. 그는 역사의 흐름이 별자리와 행성의 운행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별들의 대회합이 세계사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언은 기실 오늘날에도 가끔씩 대중들의 혼란을 야기하는 데 일조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캄파넬라는 서기 1600년이 바로 그때라고 판단하여 무력 독립운동을 전개하려다 수십 년간 감옥에 갇히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가 점성술을 절대시하는 것은 아니다. 확고한 이성과 의지를 갖춘 사람에겐 별의 영향은 소용없다고 단언한다.
“참, 그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예를 들어 40시간의 문책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들이 침묵을 지키고자 할 때는 입을 열지 않고, 그런 경우 먼 곳에서 영향력을 주고 있는 별들도 별 힘을 발휘 못한다고 하더군요. 별들은 인간의 감각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므로, 이성보다 감각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답니다.”(P.94)
한편, 이 책의 후반부는 캄파넬라의 시편을 소개하고 있다. 14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예술성 자체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태양의 나라>에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은 캄파넬라의 사고와 사상이 솔직담백하게 표현되고 있음이 인상적이다.
‘세계와 그 부분에 관하여’와 ‘사고의 방법’ 등에서 하찮은 존재인 인간의 오만함을 배격하고 우주와 신의 반영인 자연에 토대를 두는 사고와 인식을 주장함이 흥미롭다. 마지막 ‘죄를 후회하며 고백하기를 원하면서, 코카서스에 읽은 배랄로에게 보내는 시’는 짤막한 여타 시편에 비해 열세 절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표면상 자신의 과오에 대한 참회가 주를 이루고 있어 고해성사 신부와 위정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내심으로는 글쎄, 사면과 면죄를 받기 위한 고도의 노림수의 뉘앙스가 풍긴다. 더불어 자신의 삶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으려는 의연한 결의의 태도가 느껴진다.
모어의 유토피아나,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사회의 모습이다. 어디에도 없는 곳, 하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래서 추구를 멈출 수 없는 지향점. 이상 국가의 내용은 시대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가 새삼 그네들의 이상 국가론의 내용을 깊숙하게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은 그네들의 진정한 의도가 아닐 것이다. 모어와 캄파넬라가 이상 국가론을 주창할 수밖에 없던 배경은 이해하고 주창하였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보다 본연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