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네버랜드 클래식 13
케니스 그레이엄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신수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 표제가 매우 서정적이다. 영문 원제는 <The Wind in the Willows>이며 운율 효과로 발음할 때 느낌도 역시 좋다. 무엇보다도 앞뒤 겉표지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잔잔한 냇가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보트를 젓는 두 동물. 그냥 쳐다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썼던 이야기들을 모은 게 이 작품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동화와는 이야기의 지향하는 바가 다소 다르다. 말로 들려줄 때 효과적이도록 청각적 표현이 자주 보인다. 듣는 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등장 동물의 성격과 행동 묘사는 매우 개성적이며 생동감이 뚜렷하다. 정서 함양을 위하여 밝고 온화하며 따뜻한 분위기가 풍기도록 각별한 신경을 쓴 흔적도 역력하다.

 

와일드 우드와 강 마을을 배경으로 유유자적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네 동물이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두더지 모울, 물쥐 래트, 오소리 배저와 두꺼비 토드. 안온한 일상만 죽 나열된다면 곧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배치하고 독자와 청자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더불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두더지 모울이 땅속 굴을 박차고 나와 강변의 물쥐와 친구가 되고 같이 생활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낯설다. 몰은 나중에 우연히 자기가 살던 굴 근처를 지날 때 강렬한 원초적 본능의 냄새를 느낀다. 너무나 익숙하고 포근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그는 깨닫는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친구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물쥐 래트는 자신이 사는 강 마을을 너무나 사랑한다. 예술가적 기질이 농후한 그는 현재의 생활에 자족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간다. 그는 낯선 고장과 모험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럴까? 누구나 마음 한켠에 모험가와 방랑자의 자아를 품고 있다. 우리는 간혹 불안해진다. 나만 이대로 정체되어 있는 게 아닐까?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풍운을 무릅쓰고 뛰어드는 게 보다 멋진 삶이 아닐까? 방랑자 래트의 이야기에 불현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눈빛이 흐려지는 게 어디 물쥐 래트 뿐이겠는가?

 

두꺼비 토드는 가장 독특하며 개성적인 캐릭터다. 천방지축에 흥미를 끄는 일에 앞뒤 안 가리고 몰두하는 성격. 그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저택에 산다, 토드 홀. 숲속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과 유사한 생활을 하며, 인간과 교류가 있는 것이 토드다. 이 작품의 후반부는 전적으로 토드의 모험담이라고 하겠다. 자동차를 훔쳐 타다 감옥에 갇히고 탈출에 성공하여 갖가지 고생을 겪다가 고향에 돌아온 그. 그의 부재를 틈타 족제비와 담비 일당이 무력으로 토드 홀을 강탈한다. 토드와 친구들이 힘을 합쳐 악당들에 대항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

 

가장 어린이답고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가장 열렬히 환영받을 만한 유형이 토드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확실히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졌으며, 유혹에 약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굉장히 공통적이다. 토드의 존재는 잔잔한 연못에 이따금 파문을 그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작품은 역시 어린 시절에 읽어야 제격이다. 머리가 굳고 가슴이 차가워진 어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자극적이고 현란하며 재미있는 즐길거리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네들이 케네스 그레이엄이 들려주는 시적이고 전원풍의 환상적인 동화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아이들은 보다 정서가 풍부하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좋은 동화에게서 기대하는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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