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꽃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6
노발리스 지음, 김재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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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사에서 낭만파 운동은 오성 만능의 계몽주의, 따라서 고전주의와도 대항하여 감정과 공상의 주체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 파의 시인들은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숭배했고, 즐겨 조국 독일의 중세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고전주의의 형식미에 대항하여 서정적 및 음악적 미를 존중했고, 형식의 미완성 따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공상이 자유롭게 활약할 수 있는 동화의 형식을 즐겨 사용했다.” <세계문학사 작은사전(김희보 편저)>

 

낭만파 작품 중에서 위와 같은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푸른 꽃>이 될 것이다.

 

스물아홉 해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노발리스에게는 한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시킬만한 시간조차도 부족하였다. <푸른 꽃>은 제2부의 첫 장까지만 마치고 작가의 죽음으로 영원한 미완성이 되고 말았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미완성이기에 후대에 더욱 각광받았던 것과 같은 평가를 노발리스의 이 작품도 누린다. 미완성임에도 낭만파의 전형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 성공적인 작품으로서.

 

이 작품의 원제는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으로서,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노발리스는 13세기 초의 유명한 궁정 연애가수 즉, 민네징거의 이름을 작품명으로 그대로 가져왔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도 형식적이지만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소재에 즐겨 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낭만주의의 특징이다.

 

민네징거는 시인 겸 음악가이다. 대중가요로 치자면 싱어송라이터라고 하겠다. 예술이 분화되기 이전 시와 음악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다. 하인리히는 곧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작가 또한 작중 곳곳에 여러 편의 시와 노래를 삽입하여 스스로 민네징거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시와 음악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점차 합리성과 객관성이 증대되는 시대적 현상에서 인간 본연의 고유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본능적 위기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작품의 형식과 관련하여 우선 이 작품은 한 편의 동화에 가깝다. 여기서 동화라 함은 국내적 개념이 아닌 독일의 전통적 메르헨의 의미에서다. 푸른 꽃에 대한 꿈을 꾸는데서 시작하여 어머니와 함께 외가인 아우크스부르크로의 여행 출발. 시인 클링스오르 그리고 그의 딸인 마틸데와의 만남. 그녀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약속. 모든 것이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게 전개되어 간다. 세상이 주인공에게 무한한 호의를 품은 듯하다. 후대의 아이헨도르프와 슈티프터가 노발리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사회와 세계에 대한 갈등의 부재와 밝고 경쾌한 발걸음, 이것이 작품에 사실적 느낌이 아닌 동화적 성격을 부여한다. 게다가 제1부의 제9장은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동화가 아닌가. 더욱이 작가는 제2부에서 작심하고 이 작품의 동화성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한 듯 보인다. 취아네와의 대화는 지극히 몽환적이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를 통하여 교양소설 또는 성장소설의 전범을 구축하였다. 이전에 한 번 읽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한 번 재독을 검토 중이다. 괴테를 계승하기 위하여 또는 반발하는 차원에서 이후에 여러 편의 교양소설이 나왔는데, <푸른 꽃>은 광의로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노발리스는 다만 시의 의의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어 과연 괴테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낭만주의 작가다운 면모를 보이는 동시에 스스로가 시인임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하인리히가 어머니와의 여행을 통해서 만나고 듣고 겪게 되는 것은 좁은 고향의 영역을 벗어나 드넓은 세상으로의 인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때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세계와 자신과의 모든 관계를 한눈에 조망해 보면서, 세계를 통해 지금의 그가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세계가 그에게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느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에 세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모든 낯선 표상들과 자극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P.107)

 

상인, 기사, 동방의 여인, 광부, 은둔자 등 하인리히가 마주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삶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상업을 통한 세상의 현실, 전쟁의 흥분과 슬픔, 광업과 역사를 통한 인간사의 진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모두가 시인이자 철학자라고 할 만하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시인 클링스오르와의 상면은 하인리히의 성장에서 화룡점정에 해당한다. 그에게서 참다운 시의 가치와 시인의 역할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아마도 제2부의 구상은 보다 웅대하였을 것이다. 교육과 철학의 경계마저 거침없이 넘나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명백히 포함되어 있다.

 

노발리스의 작품은 매우 상징적이다. 표제 자체가 이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작품 곳곳에서 대수롭지 않게 표현되는 요소들이 개개마다 깊은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게 여겨지지만 실제로 천천히 음미해 나가면 작가가 표현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숨은 의미를 찾기 위하여 멈칫거리다가는 작품 본래의 화창한 봄날과도 같은 묘미를 놓칠 우려가 있으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발리스에게 완전한 인간형은 참다운 시인이다. 그가 생각하는 시인은 동시에 음악가이며, 마법사이고, 예언자이자 성직자요 입법자이자 의사(P.39)이다. 고대의 신화에서와 같이. 클링스오르의 입을 통한 시와 시인에 대한 관점은 노발리스가 품고 있는 견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라는 것은....무엇보다도 엄격한 예술로서 추구해야 하는 거야. 단순한 즐거움만을 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시가 아니야. 시인이 하루 종일 이미지와 느낌을 찾아서 한가하게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야. 그건 오히려 아주 잘못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순수한 열린 마음, 민활한 성찰력, 그리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생명력을 부여하는 활동으로 전환하여 계속 그렇게 유지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의 예술에 필수적인 것들이야.” (P.158~159)

 

1부 제9장의 묘한 동화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길고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시와 사랑의 힘으로 차가운 합리성의 지배를 극복하고 평화를 구하여 빛나는 생명의 나라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동화를 단독으로 보면 전체적 구도에서 생뚱맞게 보인다. 1부의 표제가 기대이고, 2부는 실현임을 상기해보면, 이상한 동화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2부가 미완성이기에 그 동화의 실현이 작품 내에서 완성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노발리스의 구상에 따르면 제2부는 하인리히가 세계를 편력하고 역사를 거슬러 오르며 인간계를 넘어 자연계마저 경험한 후 종내는 죽음의 세상마저 초탈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즉 작가는 진정한 시인과 시의 정신이 충만한 세계가 올바른 세상이자 지향해야 할 미래라고 보고 있다. 이것이 <푸른 꽃>이 못다 이룬 광대한 세계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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