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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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상실과 단절, 그리고 소통의 작품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한줄 소감이다.

 

사람은 나면서 죽는 순간까지 사회적 경계 내에서 타인과 교류 관계를 유지한다. 단독적 존재를 꿈꾸어도 이것이 불가능한 것은 사람 자체의 태생적 한계이다.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감각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시각과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은 정보 획득과 비언어적 소통의 수단이고, 언어는 자체로 의사소통의 전형이다. 시각 내지 언어 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각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 즉 나아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단절은 고립의 다른 표현이다. 타의에 의해 세상에 홀로 된 존재가 된다. 외부와의 주고받는 관계가 박탈당한다. 소외된 이는 내면세계로 침잠한다. 그는 추억을 반추한다. 그의 대화상대는 자기 자신이 된다. 불가피하게 독백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혼잣말은 큰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자신만 들을 수 있으면 된다.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그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의 목소리다.

 

몇 편 읽지 않았지만 - <몽고반점><바람이 분다, 가라> 정도 내게 한강의 작품은 관능이든 사건이든 극단으로 몰고 가는 아슬아슬함으로 기억된다. 활화산처럼 분출하지는 않지만 꾹꾹 눌러도 가라앉지 않는 감정의 꿈틀거림이 작품 전체에 배어있는. 그런 면에서 <희랍어 시간>의 서늘하고 나직함은 사뭇 의외로 다가왔다.

 

두 명의 주인공과 별다른 사건 없는 단촐한 전개, 감정의 기복이 없는 평면적 독백. 넋두리인 듯 반생을 반추하는 수기처럼 느릿느릿 화자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독자 아닌 화자 자신에게. 그들은 상호교감을 갖지 않는다. 남자는 희랍어 강사로, 여자는 희랍어 수강생으로. 여백의 미가 두드러지는 한 폭의 한국화라고 하면 이상하겠지만, 활자들로 빼곡한 지면 대신 행간이 여유롭고 표현에 생략과 절제가 전면에 나서는 후반부는 특히 그러하다.

 

감각의 상실 못지않게, 아니 두 사람에게 그보다 더욱 절실했던 것은 인간관계의 상실이다. 남자는 청소년기 이후 독일에서 이민생활을 하였다. 암암리에 존재하는 인종적 차별은 그를 힘들고 쓸쓸하게 하였다. 언제나 주목받는 동양의 아이. 그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받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소위 모국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이라고 할까. 남자가 가족의 반대에도 어두워져가는 시력에도 불구하고 귀국한 연유는 일종의 수구초심(首丘初心)에 가깝다. 여자는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혼을 겪고 아이의 양육권마저 남편에게 빼앗겼다. 여자의 언어 상실은 분명히 심인성이다. 낯선 언어에 대한 노출이 잃어버린 언어기능의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감, 그것은 곧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고립과 단절의 사람 사이를 잇는 계기는 공감과 동정이다. 여자가 부상당한 남자의 집에서 그의 독백을 밤늦도록 들어주는 행동. 새벽에 집에 갔다가 아침에 다시 돌아온 행동. 그것은 소외당한 이들의 본능적 이끌림일 것이다. 버려지고 외톨이가 된 사람들이 서툴고 힘겹게나마 자신들의 끈을 새롭게 연결시키고자 하는 필사의 몸부림. 상대방의 따뜻한 체온에 대한 그리움. 그들의 애처로운 끌어안음은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기에 관능의 울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 한강은 이 작품을 쓰기 전 한동안 소위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글 쓰는 작가가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상황, 그것은 곧 작중 인물처럼 소통의 도구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경험이다. 작가 자신의 고해성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말을 잃기 직전, 그녀는 어느 때보다 활달한 다변가였다. 어느 때보다 오래 글을 쓰지 못했다.”(P.56)

 

셀 수 없는 혀와 펜들로 수천 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널너덜하게 만든 언어.”(P.165)

 

이것은 힘겨운 작품이다. 작중 여자가 침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러했듯이 작가 또한 어휘 하나, 문장 한 줄을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이전의 자신의 작법은 모두 제쳐두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이 기초부터 천천히 하나하나씩 말이다. 출산의 두려움이자 신생(新生)의 고통이기도 하다.

 

작중 여자의 향후 삶의 전개 방향은 독자가 알 수 없다. 다만 이전과는 같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뿐이다. 작가 한강에게 이 작품의 의의가 어떠할 지도 마찬가지다. 다변보다는 침묵이 두드러지고, 쏟아질 듯 넘실거림이 소박과 절제로 선회하였다. 이것이 작가의 문학 여정에서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인가. 우연히 들렀던 한곳 휴식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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