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종교의 광기에 맞서 싸운 인문주의자, 아롬옛글밭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아롬미디어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치의 광풍이 독일을 본격적으로 휘감기 시작한 1934년, 슈테판 츠바이크는 불현 듯 에라스무스의 평전을 발표한다. 이윽고 그는 히틀러를 피해 돌아오지 못할 망명길에 접어든다. 츠바이크는 이미 1939년을 예감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온 사회가 광신에 빠져들면 평화는 유린되기 마련이며 이성 대신 오로지 피와 힘에 의한 대결로 치닫게 됨을 그는 역사에서 드러내었다. 그것이 에라스무스의 삶이자 그의 비극이다.
 

세계사에 나오는 <우신 예찬>의 저자 정도로만 인식되던 에라스무스의 역사적 위상은 실로 대단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그는 당대 지성 세계의 제왕이었다. 학문과 종교에 관한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자체로 군주와 교황도 무시 못 할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평생 방랑의 삶을 살았다. 그에게 고향은 자신이 한동안 머무를 수 있는 고장을 지칭한다. 일찍부터 고전에 경도된 그의 평생 언어는 라틴어였으며, 기독교 신학을 바탕으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전범으로 하는 인문주의 세계관이 그의 것이었다.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 그래서 모든 갈등과 대립도 대화와 타협으로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계가 그가 꿈꾸는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그는 광신을 철저히 외면하였다. 광신은 항상 독단과 아집으로 귀결되어 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든 반드시 내가 이겨야 하는 게 바로 광신의 법칙이다.
 

츠바이크는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철저한 공감을 표시한다. 저자가 살고 있던 20세기 초의 현실에 있어 매우 시의적절하며, 혼란의 시기에 결여되어 있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반면 에라스무스에게서 그는 암운에 뒤덮인 유럽의 미래를 내다본다. 정신적 우월성과 고상함만을 가지고는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교육과 감화를 통하여 정신적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며 지극히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 이상론은 언제나 힘을 지닌 현실론자에 의해 패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결정적 시기에 언제나 행동으로써 참여하기를 회피한 그에게 츠바이크는 반복적으로 장중한 애석과 탄식을 토로하는 것이리라.
 

당시 종교개혁의 바람은 필연적이었다. 대항해시대와 르네상스의 과학적 발견의 성과는 영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미쳤다. 종교계의 억압과 부패에 대하여 더 이상 무조건 머리를 숙이지 않으려는 성향이 생겨났다.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의 선구자이다. 그가 <우신예찬>을 비롯한 여러 글들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타락한 가톨릭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다. 에라스무스와 마르틴 루터는 출발을 같이 하였지만 점점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였다. 전자는 가톨릭의 자정(自淨)과 개선을 희망하였으나, 후자는 가톨릭의 파괴와 대체를 요구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신교와 구교 간의 갈등에서 낭자한 유혈을 본능적으로 예감하였다. 그래서 양 세력 간의 중재에 나섰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어려운 것이 중도이며 중용이다. 극단은 선명성을 얻기 용이하다. 중용은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로 취급되기 마련이다. 날짐승과 들짐승 간의 싸움에 낀 박쥐처럼.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을 소리 높여 외친 루터에 동조하지 않은 것은 그에게서 광신의 냄새를 맡았던데 연유한다.

“광신은 단지 자기 체제와 자기 진실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이 원한 다양한 현상 내의 다른 모든 현상을 억압하기 위해 폭력에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P.125)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이렇게 평한다.

“에라스무스의 진실된 실체는 단지 투명성이었다. 에라스무스는 깊은 사상가, 심오한 사상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범하게 넓은 정신의 소유자였으며......올바른 사상가, 총명한 사상가, 자유 사상가였고 고상한 단어로 말하자면 모범적인 이해자, 그리고 이해하도록 만들어 주는 자, 계몽자였다.(P.61)

“그의 정신의 모습을 보며, 그처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그 작은 사내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갖는 천성적인 난폭한 힘 한가운데서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P.78)
 

계몽자에게 투사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것이 그와 루터와의 본질적 차이점이다. 보름스 제국의회와 훗날 아우크스부르크 제국의회에서 그는 자신의 천부적 소심성으로 마지막 화합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에라스무스와 마르틴 루터는 상호간에 있어 필생의 숙적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역사는 루터를 승자로 만들었다. 츠바이크가 두 사람을 비교한 문장을 읽어보면 지독한 대비성을 알 수 있다.

“온건 대 광신, 이성 대 격정, 문화 대 원초의 힘, 세계시민 대 민족주의, 진화 대 혁명, 이것이 그들이 보여주는 대비이다.”(P.141)

“에라스무스적인 모든 것들은 결국 정신의 평온과 평화를 목표로 하고, 루터적인 모든 것들은 고도의 긴장과 감정의 동요를 목표로 한다.”(P.146)

“개개의 인간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정직하고 단련된 의지를 통해 더 숭고한 도덕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는 그처럼 경직된, 거의 이슬람교적인 광신에 철저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P.212)
 

이 책의 압권은 제9장 <루터와의 위대한 논쟁>이다. 서로 직접적 공격을 자제하면서 타협의 길을 모색하던 두 인물이 드디어 상대방을 겨냥하면서 펜으로 벌인 무혈의 전투이다. 각각 <자유 의지론>과 <부자유 의지론>, 그리고 <히페라스피스테스>로 이어지는 논쟁은 단순한 신학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어떻게 규정지으면, 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철학의 문제이다.
 

에라스무스의 위대성을 입증하는 저자의 찬사를 살펴보자.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편적 인간과 결합시키면서, 의식적으로 단순한 교회 법규로부터 분리하고자 한다.”(P.101)

“에라스무스에게 있어서 유럽은 하나의 도덕적 이념으로서, 철저히 비이기주의적이고 정신적인 요구로 나타난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공동 문화와 문명 속에 통일된 유럽 국가라는 요구는 에라스무스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P.118)
 

물론 에라스무스도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라스무스에게서 민주주의자와 자유주의의 선구자를 본다는 것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을 것이다. 에라스무스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민중,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과 미성년자에게 최소의 권리라도 부여할 생각은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P.130)
 

세상이 흐린데 홀로 맑고, 모든 사람들이 술에 취하였을 때 홀로 깨어있던 사람, 그이가 바로 에라스무스였다.

“지나치게 흥분한 모든 사람들 한 가운데서 홀로 밝은 이성을 구현해야 하는 일, 그리고 펜으로만 무장한 채 유럽의 통일, 교회의 통일, 인류애와 세계 시민의 통일을 붕괴와 파괴로부터 지켜 내는 일이 그의 과제인 것이다.”(P.167~168)
 

에라스무스의 역사적 패배와 더불어 고상한 이념과 지성은 자취를 감추고 분열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등장하였다. 그 후의 세계사가 과연 평화와 진보라는 측면에서 어떠했는지 새삼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극심한 사례가 이 평전을 쓴 츠바이크가 예감했던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겠는가. 그는 에라스무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를 빌어 자신이 살던 시대에 오버랩 시켰을 뿐이다.
 

에라스무스는 위대한 패배자다. 그는 잊혀지는 듯했지만 다시 부활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유럽에서 새삼 그의 이름이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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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17: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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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2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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