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격언집
에라스무스 지음, 김남우 옮김, 김태권 그림 / 아모르문디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에라스무스는 고전적 저작인 <우신예찬>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어보니 의외로 뛰어난 점이 많아서 새삼 에라스무스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책이 나온 게 없나 살펴보다 그의 <격언집>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상기 고전의 유명세에 가리워졌지만 실상 에라스무스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최초의 명성을 안겨다 준 것도 이 책이며,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적으로 개정판을 낼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게다가 그 어마어마한 분량이라니! 처음 발행 시 800여 개, 나중에는 4,100여 개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60개 정도의 그나마 짧은 글들을 맛보기로 모은 게 이 책이니 완역을 한다면 최소 수십 권의 두꺼운 책들이 쭉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게 된다.

 

각 격언의 구성은 먼저 격언 명이 제시되고 이어 숨은 뜻을 풀이한다. 다음엔 그 격언의 최초 출처와 이후 재인용된 유명한 고전의 저자와 내용이 소개된다. 가끔씩은 에라스무스 자신의 해석이나 논평이 추가되기도 한다.

 

한편 별도의 그린이에 의해 각 격언마다 라틴어 독음과 삽화가 덧붙여졌는데, 특히 삽화는 고전과 현대의 명화를 격언의 내용에 부합되게 패러디하고 있다. 자체로서 흥미롭고 격언만 나열될 때에 비해 반복되는 지루함을 없애는 데 일조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나 반드시 이 격언집의 고전적 격조와 성격에 적합하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에라스무스는 격언집에 서문을 달고 있는데, 격언의 정의와 성격 및 독자성과 유용성, 사용된 비유법 등을 다루고 있어 일종의 격언론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는 비유적 치장으로 즐거움을 가져다주며, 담겨있는 생각으로 동시에 유익을 전하고 있는 격언이야말로 최고의 격언”(P.21)으로 평한다. 옮긴이는 서문의 전문을 한번에 소개하지 않고 중간마다 분할 배치하여 역시 편집의 묘를 꾀하고 있다.

 

수록된 격언들의 풍부함과 소개된 고전들의 다양함을 통해 독자는 에라스무스의 고전 이해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 및 이후 중세에 이르기까지 고전 사상가와 작가들의 수많은 저작과 문학작품들을 거리낌없이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다.

 

격언은 우리의 속담과 금언 또는 고사성어 등과 유래와 형태 및 용도 등에서 유사하다. 그래서 소개된 몇몇 격언은 우리에게도 오히려 귀에 익다. ‘유유상종’, ‘시작이 반이다’, ‘연기를 피하다 불 속에 떨어지다’, ‘모기를 코끼리로 만들다’, ‘밑 빠진 독. 게다가 에라스무스는 단순히 고전의 소개에만 그치지 않는다. 몇몇 격언들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이 남기고 있다.

 

사도 바울은 저마다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당파 간의 논쟁을 피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오늘날 신학자들이 만약 바울의 이런 넉넉함을 조금이라도 배운다면 요즘 비일비재한 바, 하찮은 문제로 그렇게까지 싸우고 갈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그저 잊고 지내도 좋았을 것이며, 잊는다고 신앙심에 흠결이 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사람 수만큼 생각도 다르다’, P.87)

 

사람들은 왕후의 궁전에서 또 다른 종류의 원숭이들도 만날 수 있다. 만약 이들에게서 걸치고 있는 겉옷과 목걸이, 팔찌 등 장식을 걷어내면 그야말로 돈만 밝히는 형편없는 인간을 보게 된다.”(‘원숭이가 주단 관복을’, P.140)

 

격언을 선별하는 기준 설정과 과정에서, 그리고 고전 문헌에서 적절한 인용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의 당대 현실과의 비교에서 편집자의 주관과 해석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신예찬>의 맹아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에라스무스는 상아탑과 수도원에 갇혀 탁상공론만 일삼는 인물이 결코 아니다. 그는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처절히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열의를 지녔으나 시대적 한계에 가로막혀 스러져 간 참된 지식인이다.

 

이 책은 재미 외에 독자에게 두가지 유용성을 제공한다. 하나는 에라스무스에 대한 보다 심층적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점이다. 그리고 실용적 관점에서 인용된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통해 정서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친근감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에라스무스를 통해 서양 고전들이 화석과 박제 상태에서 뛰쳐나와 우리와 같이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글임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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