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리브로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노년에 과거를 회상할 때 비교적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자평하곤 한다. 물론 자신의 일생을 책으로 엮으면 대하소설이 될 것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 같은 삶은 누린 일부 사람들도 있지만.

 

이 소설은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울러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는 게 주관적인 나의 평가다. 그만큼 이 작품이 주는 흡입력은 앞의 두 작품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것은 나 자신 또한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작가가 던지는 화두가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작품은 노년에 다다른 한 노신사가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정리할 생각을 품으면서 시작한다. 소위 말하면 자서전, 즉 자신에 대한 전기를 쓰는 것이다. 전기는 위대한 인물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일진대 평범한 사람이 전기를 쓰는 게 온당할지 화자는 회의한다. 이것은 우리들 모두의 의구심이기도 하다.

 

화자의 삶은 스스로 밝히듯이 단순하고 정돈된 삶”(P.19)이었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돌이켜보면 내 뒤에 놓인 직선적이고 분명한 길을 걸어온 것이 기쁘다.”(P.23)

 

그는 평범한 삶에 대한 전기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니고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정상적이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P.24)

 

전체 34장 가운데 전반부 19장까지는 화자의 삶의 기록이다. 소소한 돌출은 있을지언정 그는 비교적 평탄한 생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삶의 역정을 추적하는 일은 더구나 지루하기는커녕 자못 재미가 있다. 역시 범인(凡人)의 삶도 타인의 한살이는 자신의 그것과 비교하여 저절로 반추하게 되며, 자신이 겪지 못한 또 다른 인생 행로를 탐험하는 듯한 기분을 자아낸다.

 

그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생이 평범하였다고 진술한다.

 

강물 물결처럼 늘 똑같고 늘 새로운 생활...늘 똑같고 늘 새로운 반복...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p.86)

 

그리고 자신의 일생은 아름답고 단순한 질서”(P.90)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한다. 어릴적 철도의 추억, 프라하의 철도 플랫폼, 그리고 철도청의 취직 등.

 

단순한 우연에 기인하는 것은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없었고 모두가 필연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P.87~88)

 

인생은 보이지 않는 연관성들로 점철된 심오하고 필연적인 단일체로 나타났다.”(P.90)

 

이렇게 평범한 인생의 가치와 미학의 발견에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이 작품의 미덕이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즈음, 내면의 다른 목소리가 등장한다.

 

20장부터 등장하는 또 다른 나의 존재는 화자의 삶이 앞선 기술만큼 평범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표면적 평범성 속에 사실은 자아의 갈등과 억압과 타협이 잠복되어 있음을! 이제 화자의 삶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건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고 끔찍한 삶이었어. 그걸 모른단 말인가?”(P.150)

 

전반부의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은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

 

남자에겐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P.119)

이것은 가정, 즉 아내와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시사한다.

 

놀랍게도,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와 신혼시절에 대해서도 거의 회상하지 않는다.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들의 역에서 보낸 조용하고 변화 없는 시절이다.”(P.123)

그는 역과 가정의 주인이었어. 그것은 작고 폐쇄된 세계였지만 그의 것이었고 그를 숭배했어. 그때가 사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아내를 회상할 때면 실은 바로 이 시기를, 그의 자존심을 강하고 건강하게 만족시켜 주던 이 시기를 생각하는 거야.”(P.147)

 

이후 숨어있던 다양한 자아 또는 인생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8개의 삶인데, 그 중 평범한 자아, 억척스런 자아, 우울증 환자인 자아의 3개는 외부로 표현되어 화자의 공식적 삶을 대변하는 속성이 되었고, 나머지는 잠재되어 이따금 은밀히 표출되곤 하였다.

 

여기서 또다시 인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된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 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고,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P.212)

 

이 집합은 자체의 단일성을 지니면서도 내적 긴장과 갈등 또한 내포하고”(P.214) 있다. 이러한 집합 내의 갈등이 인생의 드라마를 구성한다.

 

여기에 개체를 초월하여 세대로 이어진다면 무수한 사람들의 총합이 가능하다. 즉 우리가 선택 가능했던 삶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로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화자는 이렇게 깨닫는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평범한 삶의 흐름이 갑자기 내게 전혀 다르게, 한없이 위대하고 신비스럽게 보인다. 그건 내가 아니었고 우리였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고 얼마나 총체적인 삶을 살았던 것인가!”(P.221)

 

우리들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P.236~237)

 

그것이 진정하고 평범한 인생이며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P.237)

 

작품의 표제 평범한 인생은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역설이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비범한 인생을 담고 있음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차페크의 3부작을 통해서 이 소설의 의의를 되새겨 본다. 그의 추구는 삶에 있어 진실은 무엇인가에 있다. 즉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의 존재와 발견 가능성에 대한 탐문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개인의 삶이, 표면적으로 평범하고 단순한 인생일지라도 실은 그것이 자아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구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무한(無限)이 유한(有限)한 특정의 개인의 삶으로 수렴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신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 말미에 철학소설 3부작에 부치는 작가의 말이 7면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3부작에 읽은 것과의 차이 및 내가 놓친 것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차페크의 예술적 극성기를 대표하는 3부작 가운데 가장 걸작인 동시에 핵심인 이 작품이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음은 너무나 유감스럽다. 조만간 새로운 판본으로 나오길 열렬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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