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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예이츠
정영희 지음 / 평민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앞서 읽은 예이츠의 시집에 대한 아쉬움에 기인한다. 이십여 편의 시와 간략한 권미(卷尾) 해설은 예이츠의 시 세계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썩 만족스럽지 못하며 친절하지도 못하다. 물론 해설서를 찾아보면 되겠지만 전문 독서인이나 연구자가 아닌 경우 가볍게 시를 읽으려는 의욕을 저하시키는 조언이다.
이 책은 예이츠 초심자를 위한 안전한 선택이 될 것으로 감히 생각한다. 수록된 시도 38편으로 가장 많으며, 내용도 매우 충실하다. 게다가 어렵지 않다는 큰 미덕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은 시인의 작품 세계를 네 단계로 구분하고 각 시기를 대표하는 시들을 수록하는 방식이다. 시는 응당 영한 대역이며, 각 시마다 작품 해설을 덧붙이고 있어 개별 시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생애와 전반적 작품 세계에 대한 기술이 책 말미에 자리 잡고 있어 구성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앞서 두 권의 시 선집과 상당 부분 겹치지만 생경한 시편들도 등장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저자는 예이츠의 작품들을 신화적 민족문학, 가톨릭 중산층과의 충돌과 영국계 아일랜드 문화론의 대두, 존재통합과 문화적 이상, 그리고 비극적 환희와 현실 수락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통상적 시기 구분과 유사하지만 세 단계가 아니라 네 단계로 나누어 존재의 통합을 세분하는 점이 이채롭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서정성과 모더니즘의 미학을 벗어나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서 예이츠가 느꼈던 고독과 영국과 아일랜드 두 나라에 대한 그의 애증 섞인 복합적 태도”(P.6)에 대한 인식이다. 예이츠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를 바라면서도 영국적인 봉건 귀족주의가 이끄는 사회를 지지하였다. 그는 대중의 얄팍한 지성과 물질 숭배의 태도를 혐오하여 <‘서구세계의 바람둥이’를 증오한 사람들에게>나 <1913년 9월>, <거지가 거지에게 소리쳤네>에서 격렬하게 비판한다. 이런 혐오감은 추후 전체주의 체제에 대한 호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예이츠의 애매한 입장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모호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생명을 담보로 한 유혈투쟁의 타당성에 대한 일말의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1916년 부활절>과 <에바 고어부스와 콘 마키에비츠를 추모하며>가 그러하다.
그의 존재의 통합의 이상은 <학교 아이들 가운데서>에 잘 드러나 있다. 예이츠는 극단을 회피하고 균형과 중용의 정신을 찬미한다.
“실재에 대한 꿈과 실재 자체는 다르며 설사 그 꿈이 숭고한 것이라도 그 때문에 삶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이츠의 생각이었다. 그는 삶이 명분보다 중요하고 추상적 명분에 앞서 구체적 삶에서 참다운 진리, 즉 직관적 진리가 터득된다고 생각했다.” (P.137)
중도와 조화의 정신은 얼음처럼 차가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이츠는 생명력의 분출을 중시하였으며 그것은 무모하다시피 한 열정이기도 하다. 열정에 대한 몰입, 그것은 인간이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이며 존재의 통합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오, 음악에 맞추어 흔들리는 몸이여, 오, 빛나는 눈길이여,
어찌 춤추는 이와 춤을 가를 수 있겠는가?” (P.135)
달관과 초월의 경지에서 바라보면 세상사의 번잡함은 찰나에 불과하며, 인간사의 아웅다웅은 한바탕 웃음거리 밖에 지나지 않는다. 인위적인 차별이 없는 상태, 예이츠의 말년의 시는 그러한 심경을 반영한다. 미친 제인이 보기에 주교의 권유는 종교적 속박의 옹졸함에 뒤덮여 있다. 하지만 주교를 저주하는 것도 신물 난 예이츠는 관조적 태도를 취하는데, 저자는 이에 ‘비극적 환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비극적 환희는 이상과 거리가 먼 현실에, 반쯤 슬퍼하고 반쯤 조롱하며 저항하는 황홀경의 상태에서 시대의 현실을 연극의 관람객처럼 초연하게 받아들일 때 솟아나오는 삶에 대한 긍정이었다.” (P.155)
모순적 용어의 병치, 그것은 진정한 기쁨으로 넘치는 환희는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체념은 더 이상의 절망을 막아주기에 심적 상태는 개운하고 홀가분하다. 이는 절대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거나 아니면 죽음을 예감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경지라고 하겠다. 그렇다. 예이츠는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 게 아닐까?
그의 마지막 시 <불벤 산 기슭에서>는 후배 시인들에 대한 당부와 유언을 담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의 시인들이 “웅대했던 700년에 걸쳐 / 흙에서 다져진” 농민들, 시골 신사, 수도사, 짐꾼들, 명랑한 귀족과 귀부인들을 노래하라고 권유한다. “다가오는 세상에도 / 우리 여전히 불굴의 아일랜드 국민일 수 있을 / 미래에 마음을 기대시게”, 이렇게 말이다.
그의 유언은 비장하며 단호하다.
“삶에,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시게.
말 탄이여, 그냥 지나가시라!”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