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시인선 11
예이츠 지음 / 민음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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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켈트 신화와 관련된 일련의 책들을 읽다가 알게 된 예이츠, 그의 <켈트의 여명> 자체는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예이츠에 대한 나의 관심을 촉발시키는 데는 성공하였으니 예이츠의 시작들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품게 만들었다.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이 시선집에는 3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생전에 방대한 작품을 남겼던 시인이었던 만큼 선별된 시들이 얼마나 그의 시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대체로 문학적 시기를 아우르면서 추려낸 것들로 보이는데, 출전을 명기하지 않아 자못 난감한 측면도 있다.

 

일독한 첫인상은 평범함과 모호함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번역문과 원문을 나란히 수록하여 애매한 대목은 원문으로 이해가 가능하여 작품 해독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가능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해설서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매우 난해하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세계가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의 삶과 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그리고 문학의 배경을 이루는 켈트적 뿌리와 정치적 상황, 운명의 여인에 대한 일관된 사랑 등도 발견하였다.

 

예이츠의 세계는 한마디로 깊고도 넓다. 그는 서양의 고대와 현대를 포괄하는 정신사적 세례를 받은 외에 동양적 신비주의, 즉 힌두교와 선불교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시는 자연의 풍광과 서정적 감상을 읊은 데서 출발하여 개인과 사회의 재인식으로 변모하고,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통일(Unity of Being)’로 요약되는 초월적 경지로 발전하였다. 해설서의 부제처럼 그의 시와 삶은 존재의 완성을 향한 치열한 구도의 경지라고 하겠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문학적, 전기적 배경에 대한 인식 없이 덩그러니 놓인 한 편의 시에 대해 얼마만한 이해가 가능할지 회의를 품게 되었다. 세간에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이니스프리 호도(湖島)>는 오히려 초기의 감상적 편린에 불과할 따름이다. 오히려 <몰 매기의 노래>와 <길리건 신부의 노래>라는 두 편의 발라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시는 늙음의 초라함을 슬퍼하지 않는다. 늙음은 지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뜻한다. 오히려 빛나는 청춘의 날들이 지혜라는 기준에서는 거짓될 날일 수 있다.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다>와 <비잔티움 항행>, <오랜 침묵 끝에>에서처럼.

 

그렇다고 그가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술 노래>와 <정치>를 보면 그가 세속의 전쟁이나 정치적 발언보다 젊은 여인을 안아보았으면 하는 상념을 통해 인간에게 더욱 중요하고 살가운 것이 바로 사랑임을 웅변하고 있다.

 

초월자, 각성자의 눈에는 “깨끗함과 더러움은 한 집안”(<크레이지 제인이 주교와 이야기하다>)일 뿐이며 우열과 청탁의 구별이 없다. 이런 상대성의 진리 앞에 인간의 욕심과 단견을 쉽사리 그 천박함이 노정되고 만다.

 

그의 시에는 독특한 정신과 기품이 내재되어 있다. 시라는 장르의 속성상 번역을 통해서 원작의 묘미를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알고 있지만, 그나마 영시이므로 조금이나마 원문 독해가 가능한 장점이 있어서 번역문과의 대조를 통해서 대략이나마 시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그의 시는 반복되어 낭송하더라도 지루함이 없으며 묘미가 새록새록 배어나온다. 모든 영시가 이러했다면 난 진작 영시의 팬이 되었을 터인데. 앞으로 예이츠의 세계에 들어가 보련다,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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