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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요정 운디네 - 개정판 ㅣ 에버그린북스 9
푸케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한 편의 아름답고도 슬픈 동화다. 하지만 동화라고 해서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속단하지는 말자. 오히려 이 동화 소설은 청소년 내지 성인들이 읽어 마땅한 작품이다.
그대는 <인어공주>를 기억하는가? 물속에서 행복하게 살던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지만 그녀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에 배신당하고 결국은 한줄기 물거품으로 명멸하였을 뿐.
물의 요정 운디네도 마찬가지의 숙명을 타고났다. 그녀는 인간을 사랑하고 결혼하여 영혼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영원한 사랑을 보장하지는 못하였다. 사랑하던 이를 죽게 만들고 자신은 샘물로 화해 버린 슬픈 존재.
운디네에게 사랑 외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녀는 요정에서 인간이 되고자 하였으나 본성에 내재된 요정의 속성과 인연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결코 진정한 인간이 되지는 못하는 존재, 그것은 한순간의 사랑으로는 눈감을 수 있지만 영원히 극복되지는 못하는 치명적 약점.
그것이 독자가 운디네의 첫사랑이자 남편이며, 동시에 배신자인 훌트브란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는 연유가 아니겠는가? 훌트브란트의 바램은 어찌 보면 매우 소박하다.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걸맞는 여인을 아내로 삼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는 운디네를 사랑하지만 요정보다는 인간과의 사랑을 더욱 갈구하였다. 그의 눈앞에 기이한 요정의 자취, 즉 퀼레보른이 자주 띄지만 않았어도 둘의 행복은 더 오래 지속되었으리라. 훌트브란트가 은연중 꿈꾸던 인간과의 사랑, 그것은 인간이기에 지극히 당연한 본능적 요청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같은 부류끼리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물의 정령이 괴이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한편으로 운디네에 대해서 점점 불쾌한 기분을, 심지어 적의를 품기에 이르렀다.” (P.124)
그런 면에서 베르탈다에 대한 인간적 동정심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운디네가 베르탈다의 성명축일에 벌인 잃어버린 친부모와 상봉이라는 깜짝쇼에 대해 그녀가 보인 그토록 격렬한 거부반응도 일면 수긍된다. 작중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하루아침에 귀족계급에서 가난한 어부의 딸로 신분상의 추락을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훌트브란트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이미 그와 운디네가 만나기 이전부터 싹트던 것이므로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훌트브란트의 개인적 미덕과 사회적 지위 및 재산 등을 고려하면 놓치기 어려우리라. 베르탈다는 전형적인 인간으로서의 젊은 여성을 상징한다.
문득 이런 상념이 떠오른다. 요정 운디네와 인간 운디네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우문(愚問)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영혼을 갖기 이전 운디네는 자연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였다. 그때의 언행은 예의범절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있었고 겉치레와 가식에 물들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우리들은 당신네 인간보다 훨씬 행복한 처지라 할 수 있어요...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그런데도 우리는 한탄을 모르고 즐겁게 살고 있지요.” (P.68~69)
한편 결혼 이후 운디네는 웃는 때보다 슬퍼하고 탄식하는 날이 더 많았다. 글자 그대로 인간이기에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게 되는데, 운디네는 눈물조차 즐거움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리고 나는 영혼이 있기 때문에 울 수가 있어요. 눈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저씨는 도저히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말예요. 눈물 역시 즐거움의 극치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영혼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즐거움의 극치인 거예요.” (P.138~139)
여하튼 물의 요정과 인간의 결합은 불행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각종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에서 누차 반복되고 있다. 신분 차이는 극복되지만 태생 차이는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한 편의 동화에 관심이 끌리는 것은 비극이 예고된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과 중부 유럽의 산과 호수, 계곡이라는 지형적 배경과 정령의 등장에서 오는 신비하고 기이함이 날실과 씨실로 엮어져 기묘한 매력을 던지는 데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