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르.브리기타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 시리즈 25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지음, 권영경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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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티프터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기분이 상쾌하다. 세속 잡사에 어수선하던 머릿속이 평온해지고 엉클어진 실타래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슈티프터의 글을 계속해서 찾아 읽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맛 때문이다.

 

경제적 곤란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들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작가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의 글에는 사랑과 자연이 공존하다. 그의 사랑은 열정과 정념이 난무하는 숨 가쁘고 육체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의 자연 또한 인간을 압도하고 위협하는 거대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품어주는 그러한 자연이다. 겉치레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면의 깊이와 우아함을 중시하는 태도가 자연스레 작품의 기품을 높여준다.

 

<콘도르>는 그의 데뷔작이다. 네 개의 장은 ‘밤’과 ‘낮’, ‘꽃’과 ‘열매’의 각기 대응되는 표제로 이루어져 있어 작가의 의도를 짐작케 한다.

 

무언가를 초조히 기다리며 잠 못 이루는 젊은 화가가 바라보는 창밖 도시의 밤 정경. 용감하게 열기구에 올라타 비행의 꿈을 성취하려는 젊은 여성. 남성과 동등하고자 하는 여성의 도전은 무모한 오만이었음으로 끝나고 남녀의 갈등은 눈물과 입맞춤으로 화해를 이룬다. 이윽고 화가는 길을 떠난다. 여인에 더 당당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하여.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다.

 

이 작품은 몇 가지 관점에서 되씹어보게 한다. 코르넬리아의 용기와 도전은 작중의 평가처럼 오만하고 무모한 것이었는지. 남성에 비해 수동적이고 연약하다는 인식은 작품이 씌어진 당대의 통상적 관념이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한편 화가는 떠나고 훗날 코르넬리아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장면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다. 그들은 화해하고 상호간의 사랑을 인정하였지만, 화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신분높은 여성에 당당하기 위하여 화가로서 세상의 인정을 받을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코르넬리아는 그를 떠나게 한 원인이 결국 자신이 열기구에 탄 행동임을 자책하는 것이다. 이로써 남녀 간의 사랑은 실현에 있어 결국 세속의 틀과 한계에 가로막히고 만다.

 

“사랑은 아름다운 천사다, 그러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반당한 사랑은 죽음의 천사와 다름없다!” (P.18)

 

<브리기타>는 슈티프터 문학의 본령에 가깝다. 슈티프터의 장기인 숲이 아니라, 헝가리 대평원을 무대로 거칠고 황량한 들판과 그곳을 개척하며 삶의 영역으로 구축해 나가는 사람의 의지와 소박한 인간성, 특히 헝가리 전통에 대한 서술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현재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분리되었지만, 19세기에는 하나의 연방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에는 같은 나라 내에서도 이국적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작가는 서두에 이런 문장으로 작품의 전개방향을 짐작케 한다.
“추한 사람의 얼굴에서도, 금방 그 가치를 끌어낼 수는 없지만, 가끔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P.53)

 

화자와 소령의 여행 중 인연으로 결국 화자는 소령이 정주한 헝가리를 방문한다. 화자는 세상을 탐구하고 체험하고픈 방랑벽을 지녔으며, 화자의 눈으로 우리들도 대초원의 광활함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 소령은 넓은 영지를 지닌 지주이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하인 및 목동, 인부들과 평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화자는 궁금하다. 소령이 발견한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소령은 황야의 농지개간과 인부들과 어울리는 삶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행을 다니면서 평소 늘 멀리서만 찾아 헤매던 이런저런 행복을 이 곳에서 비로소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죠.” (P.99)

 

슈티프터 글의 특징은 이따금 나타나는 작가의 서술식 의견 개진에도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관과 인생관, 미적 관점 등을 독자에게 강요함이 담담하게 표명하는데, 자칫하면 도덕적 설교로 받아들이기 딱 좋은 내용이지만, 딱딱하고 지루함이 없이 이게 은근히 가슴에 와 닿는다.

 

3장 초원의 과거 편에서도 “인간이란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면을 지닌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피상적으로 보이는 감미로운 환영에 이끌려,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P.114)로 시작하여 두 면에 걸쳐 이러한 서술이 나타난다.

 

브리기타는 외모로 인하여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피해를 받은 여성이다. 주변의 냉대는 자연스레 공격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으로 발전하였으며, 자신도 굳이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런 브리기타에게 숨겨진 내적인 보물을 발견한 이가 소령, 즉 슈테판이다.

 

슈테판과 브리기타의 결별은 예상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내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찬미하는 남자라도 속성상 외적 아름다움에 무심치 못한다. 또한 남편의 사랑을 확신하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더구나 외모가 빼어나지 못한 경우 더더욱 일말의 불안감을 가슴에 품기 마련이다.

 

무려 십오 년 이란 인고의 세월동안 소령은 여행과 방랑으로, 브리기타는 어린 아들의 양육과 황무지 개간으로 내적 성숙을 이루었다. 조심스러운 재회는 우정으로, 우정은 드디어 사랑의 재발견으로 점화되며, 해피엔딩으로 마친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역경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엔 외모의 편견을 통한 인간관계의 어긋남에 대한 엄혹한 비판이 있으며, 노력과 행동을 통한 인물의 발전과 성숙의 가치도 보여준다. 게다가 여행과 방랑을 통해 본 헝가리 초원의 풍경과 그네들의 생활 모습은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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