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기의 영웅들 - 켈트 신화 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 3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타임라이프 신화와 인류 시리즈의 한 권으로 판형이 매우 크다. 282*240이므로 통상적인 신국판보다 훨씬 더 큰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시리즈의 특성상 오로지 글이 아니라 상당한 수의 사진과 도판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 시각적 인지효과를 높이고 있다.

 

앞표지 사진의 강렬함이 우선 눈길을 끈다. “패배에 반항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켈트족 족장이 제 가슴에 칼을 찔러넣고”(P.6) 있는 기원전 225년경의 조각품이라고 한다.

 

켈트족은 기원전에 이미 전성기를 누렸고 로마 제국의 발흥과 더불어 세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소멸되어 갔다. 8면의 켈트 강역도를 보면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서로는 아일랜드에서 남으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북부, 동으로는 다뉴브 강을 따라 오늘날의 터키 중부까지 뻗어있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터키의 갈라티아, 프랑스의 갈리아 등의 지명에 그 흔적이 여실하다.

 

하지만 켈트 문명은 로마 제국과 중세 기독교 세계를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었고, 오늘날 아일랜드와 웨일즈 일부에 명운을 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도 거의가 이들 아일랜드와 웨일즈의 신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 외 브리튼과 브르타뉴의 아서 왕 전설이 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켈트 문명과 신화에 대한 전반적 개요이며, 이어서 아일랜드의 켈트 신화와 웨일즈의 켈트 신화가 소개된다. 마지막 부분은 아서 왕전설이다.

 

아일랜드의 것은 투아하 데 다난과 피르볼그 족과의 전투, 그리고 다난 족과 인간인 밀레투스 족과의 전투, 이어서 인간 세계의 전설적 영웅인 쿠쿨린과 핀 및 기타 신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 웨일즈 신화는 마비노기온의 네 지편이 중심이 되어, 축복받은 브란과 위대한 영웅 쿨루크 등이 등장한다. 사실 이 내용들은 앞선 책들을 통해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접한지라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치는 매우 큰데, 산만한 신화의 내용을 솜씨 좋게 요약하고 있으며, 사진자료 및 참고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초심자의 이해를 제고하는데 유익하다.

 

아서 왕의 전설은 요즘 내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장르이다. 아서 왕은 신화와 영웅담이 혼재되어 있을뿐더러 각 지역별(브리튼, 브르타뉴, 독일)로 동일 인물에 대한 명칭도 다를 뿐만 아니라 파생된 독자적 외전이 존재하여 일목요연하게 전체 체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는 아서 왕의 역사와 전설을 대조하며, 주요 등장인물인 멀린, 가웨인, 란슬롯,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의 열전과 아울러 성배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기분이 좋다.

 

켈트 문명과 신화는 내적으로는 사제인 드루이드들이 문자기록을 하지 않고 암송으로 문명의 핵심을 전수하는 방법의 한계와, 외적으로는 중세 기독교의 종교적 침입과 탄압으로 상당 부분이 소실된 상태다. 하지만 유럽 문화에는 여전히 켈트족의 자취가 역력하니, 마법과 환상, 요정과 유령 등이 살아 숨 쉬는 그 세계는 분명 예수와 이성이 지배하는 정통 유럽의 문화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과장하면 기독교 문명이 양지를 지배한다면 켈트 문명은 서양인의 음지를 지배한다고 할 정도다.

 

재언한다면, 이 책은 켈트 신화에 대한 교과서적 입문서다. 하지만 여기서 포괄하는 내용이 기실 켈트 신화의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 책의 장점인 동시에 잔존한 켈트 신화의 빈약함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한편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세계10대문명 시리즈로 나온 <켈트>라는 책이 있는데, 역시 커다란 판형을 자랑한다. 몇 장 들추어 본 결과 고고학과 역사학적 관점에서 켈트 문명을 다루고 있어 이것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만 신화 외에 문명으로서 켈트를 알고 싶으면 꽤나 유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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