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의 여명 - 신화와 민담과 판타지 펭귄클래식 44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서혜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켈트 신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예이츠의 이 책을 펼쳐들게 되었다. 하지만 켈트 신화와 전설에 목마른 독자들이여, 이 책을 보지 말지어다. 이 책은 순진한 기대를 찬연히 배반한다. 예이츠는 신비하고 웅대한 켈트 신화가 아닌, 왜소하게 전락한 요정과 유령의 잔영만을 쫓고 있다.

 

켈트 신화를 돌아본다. 피르볼그 족을 밀어내고 아일랜드를 차지한 투아하 데 다난 족은 포모르 족의 도전마저 물리쳐 확고한 지배기반을 구축한다. 여기까지가 신들의 전쟁이다. 알지 못한 시간이 흐른 후 인간인 밀레시안 족이 아일랜드에 들어오고 인간과 신의 대결에서 신은 패배하고 아일랜드와 지상을 인간에게 넘겨주고 자신들은 지하의 세상으로 물러난다. 이후 신족은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서서히 신성을 상실하고 왜소화되어 드디어 후대에는 요정으로 바뀌게 된다.

 

이 작품에서 예이츠가 기록한 켈트의 민담은 대부분 요정의 흔적을 다룬다. 일부는 유령과 연관되는데, 기실 이 책에서 요정과 유령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 요정의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쁠 것이며, 하물며 위대한 선조들이 이를 알면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부언하자면 표제와는 달리 예이츠가 자신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요정과 유령 등에 얽힌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채록하였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19세기 후반의 아일랜드 시골에 기독교의 길고도 광범한 세례에도 불구하고 오랜 이교도적 정신세계가 소실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럽과 유럽인이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기독교화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아일랜드의 시골은 점차 소멸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켈트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예이츠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단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이츠의 시에 드리워진 깊은 신비주의는 켈트적 특성과 맥을 같이하는 게 아닐까. 더욱이 예이츠는 자연의 신비를 상실해가는 근대 문명의 도시적 기계적 측면에 거부감을 가지고 이의 대안으로 켈트를 추구한 것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순진함도 지혜도 없는 우리만이 그들을 거부해 왔을 뿐, 모든 시대의 순진한 사람들과 고대의 현자들은 그들을 본 적이 있고, 심지어 그들과 대화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신성한 종족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순진하고 열정적인 본성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죽어서 그들과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P.87)

 

이것이 예이츠의 사고관이며, 작품세계의 기본정신일 것이다. 또한 아래는 순수한 옛적에 대한 향수와 동경의 표출을 통한 근대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한계를 모르는 증오와 순수한 사랑을 알았고, ‘예’와 ‘아니요’로 자신들을 지치게 하거나 ‘아마’와 ‘어쩌면’으로 된 변명의 그물로 자신들의 발을 얽매지 않았기 때문이다.” (P.105)

 

예이츠가 켈트 전승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민속예술은 실로 최고의 생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사소한 것, 단순히 재주를 피운 것이나 예쁜 것을 저속하고 불성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확연히 거부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속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여러 세대의 생각을 모으기 때문에 모든 위대한 예술이 뿌리를 내리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P.177)

 

결론적으로 켈트의 신화와 전설 면에서는 기대에 부합하지 않지만, 예이츠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이 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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