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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너머의 나라 켈트의 속삭임 - 신화로 만나는 세계 3, 켈트 신화
레이디 오거스타 그레고리 지음, 홍한별 옮김 / 여름언덕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켈트 신화에 대한 대중적 소개서이다. 앞선 찰스 스콰이어의 책에 비해 보다 평이하고 덜 난삽하게 쓰려고 한 자취가 역력하다. 옮긴이는 저자의 <신과 전사> 제1권을 기본으로 읽기 쉽게 편역하고 도판과 설명을 추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켈트 신화에 대한 입문서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에 헌신하였으며, 예이츠의 동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켈트는 기본적으로 아일랜드에 국한되어 있다는 한계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화 단계까지만 다루고 이후 전설과 영웅의 시대는 제외되어 있다. 쿠훌렌과 핀 막쿨, 아서 왕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제외되어 있는 것이 이런 연유이다.
켈트의 기본 신족인 투아하 데 다난이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 그 땅에는 이미 원주민, 피르볼그 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투아하 데 다난은 피르볼그 족과의 전쟁을 통해 모이투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세력을 몰아내고 아일랜드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거인족 포보르[포모르] 인들이 압박을 가하여 반노예 상태로 전락하여 곤경을 겪다가 긴 팔의 루의 등장을 계기로 삼아 일대 봉기를 꾀하고 모이투라 대전에서 포보르 족의 세력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여 이후 긴 세월 아일랜드를 지배한다.
이후 인간인 게일 인들이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지배권을 놓고 쟁패를 벌이는데 신족이 인간족에게 패배하는 파란이 탈틴 전투에서 벌어지고 이후 지상의 패권을 게일 인들에게 넘겨주고 투아하 데 다난은 지하의 세계를 다스리는데 만족하게 되며, 신화시대는 끝을 맺는다.
이렇게 보면 아일랜드의 켈트 신화는 상당히 잘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 신화에 비하면 혼란스러운 점이 매우 많은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서구문화의 주류로 편입된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 간의 불가피한 차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그리스 신화와의 차이점은 신들은 기본적으로 불사이지만 다른 신족 또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모순되는 사실이다.
켈트 신화에는 매력적이며 흥미로운 신들이 여럿 등장한다. 우선 다재다능한 태양신 긴 팔의 루가 그러한데, 포보르 족에게 보인 관대함은 투렌의 세 아들의 장대한 모험에도 풀리지 않는 가혹함과 매우 대조적이다. 미이르와 에탄의 일화는 인간과 신간의 사랑다툼을 보여주며, 맨 섬에 자취를 남긴 바다의 신 마나난(마난난)과 엇갈린 리르의 아이들의 운명은 신들의 영락의 비극적 가시화이며 점차 기독교의 영향에 포섭되고 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들이 추방과 유랑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후 아버지의 시이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눈에 뜨인 것은 “풀로 덮인 작은 언덕과 쐐기풀 덤불뿐”이었다.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켈트 신화에 대한 간략한 입문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켈트 신화에 대한 개략적 흐름과 신들 및 그들의 일화를 처음 접하는데 용이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기의 이야기는 방대한 켈트 옛 이야기의 단편에 불과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의 조각난 신화들은 물론이고 전설과 영웅시대의 켈트 이야기도 더없이 흥미롭다. 게다가 이야기 차원이 아닌 역사적 고고학적 차원에서 켈트 문명에 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삼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켈트 신화는 단순히 오래전 서양에 머물렀던 종족의 헛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켈트 신화가 서양 예술과 문학에 남긴 유산은 막론하고,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못지않게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남아있으며, 서구 문명이 세계 문명의 보편적 가치로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문화에도 켈트의 영향이 전무하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현대 사회는 정서상으로 메말라있다. 건조한 감성과 빈약한 상상력을 채워줄 수 있는 기본적 원형이 바로 신화에 있으며, 현대인들이 신화에 굶주리고 열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