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알 이야기 을유세계문학전집 26
크레티앵 드 트루아 지음, 최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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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전설은 서양 문화와 문학에서 독특한 파생물을 낳았는데 그것은 바로 ‘성배’이다. 12세기에 불현 듯 문학적 소재로 등장한 성배는 이후 무수한 추종자를 양산하였으며, 대중예술과도 결합하여 아서 왕 전설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 성배의 시초가 트루아의 운문 소설 <그라알 이야기>라고 한다. 아서 왕 전설을 문학의 형식으로 전환한 최초의 작가인 트루아는 이 미완성작을 통해 세계문화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옮긴이는 ‘그라알’이란 어휘를 굳이 번역하지 않았다. 그라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탐구가 이 작품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그라알이 성배로 고착화된 것은 트루아의 후대 작가들의 노력 덕택이다. 성배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포도주를 담았던 잔이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를 담았던 글자 그대로 신성한 잔 내지 그릇이 되었다. 하지만 트루아는 그라알에 모호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후대 아서 왕의 기사들은 성배라는 유형적 존재를 찾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데 반해 트루아는 그라알의 의미를 찾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내 최초 번역된 이 작품은 이중적 구조를 지닌다. 전반부는 페르스발(퍼시발, 파르치팔)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웨일스의 촌뜨기는 우연히 마주친 기사처럼 멋있게 되기 위하여 무작정 아서 왕을 찾아 나서고 어거지로 기사로 서임받는다. 이후 페르스발의 행각은 좌충우돌이다. 돈키호테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때로 어처구니없는 행동에서 은근한 해학과 재미를 제공한다. 그는 순수하지만 무지하므로 규범과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여러 용맹한 기사를 무찔러 세상에 명성을 알리게 된 페르스발은 우연히 어부왕의 성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그라알과 피 흘리는 창을 목도한다. 그는 궁금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다.

 

후반부는 아서 왕의 조카인 고뱅 경(가웨인, 가윈)의 독무대다. 고뱅 경은 모든 면에서 페르스발과 다르다. 누구 못지않게 용맹하지만 품위있고 기사 예법에 밝은 그는 진정한 기사의 표본이다. 공개적으로 모욕받아 결투를 위해 길을 나서는 그도 도중에 여러 경험을 하는데 환상의 성에서 아서 왕의 모친과 자신의 모친이 죽지 않은 채 살고 있음을 알게 되다. 그는 결투에 휘말리게 되어 아서 왕과 기사들을 오도록 청하며, 여기서 작품은 끝난다.

 

옛날 작품이고 운문체의 원문임에도 비록 운율은 느낄 수 없다 하더라도 매끄럽고 이야기 이해가 쉬우며 재미있어 어색함을 느낄 수 없으니 이는 전적으로 옮긴이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라알은 무엇일까?

 

작중에서 그라알은 여러 사건과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무심히 흘러간다. 하지만 이후 페르스발의 뇌리와 그를 질타하고 잇따라 경고하는 사촌누이는 어부왕의 궁전에서 그가 겪은 체험이 결코 범상하지 않음을 일깨운다.

 

핏방울이 솟아나는 새하얀 창과 촛불이 빛을 잃을 정도로 환한 빛이 퍼지는 그라알. 이 기이한 장면을 보면서 페르스발은 궁금하지만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촌누이는 그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성을 낸다. 그리고 그의 침묵이 커다란 행운을 놓친 것이며, 그는 물론 수많은 다른 사람들마저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녀는 아서 왕의 궁정에서 다시 한 번 페르스발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수년 동안 방랑을 거듭한 페르스발은 한 거룩한 은자의 집에서 비로소 어부왕의 정체와 그라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잘못에 회개를 하고 성체를 받는다. 그의 숙부인 은자에 따르면 그가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은 죄 때문에 혀가 굳어져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심스레 추론해 보면, 창과 그라알에 대한 질문은 참된 신앙의 길에 들어서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다. 페르스발은 어릴 때부터 믿음에는 대체로 무심하였다. 기독교가 사회와 문화 전반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비종교자는 용인할 수 없는 존재이며, 최고의 악이자 불행을 가져오는 존재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리 심한 비난과 저주가 퍼부어졌을 것이다.

 

한편 작품의 또 다른 축인 고뱅도 페르스발 못지않은 기이한 모험을 겪는다. 에스카발론 왕 앞에서 결투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 고뱅은 “눈물처럼 영롱한 핏방울이 맺히는 창”을 찾아 바치는 조건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 창은 언젠가 아서왕의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의 창이다.
 
또한 그는 마법의 궁전에 들어가 그 성에 씌워진 마법을 깨뜨리는데, 그 성에는 놀랍게도 아서 왕의 모친과 고뱅 자신의 모친이 여왕으로서 살고 있다.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지 수십 년도 더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여왕은 자신을 포함한 성 안 모든 사람들의 주군으로 고뱅을 인정한다. 고뱅의 주군인 아서 왕의 모친이 고뱅을 주군으로 섬긴다. 일견 모순되는 관계라고 하겠다.

 

작가는 성의 마법을 깨뜨릴 기사의 자격을 이렇게 기술한다.
“그는 현명하고 너그럽고 탐심이 없으며, 아름답고 용감하고 고귀하고 충성스러우며, 비열함도 다른 어떤 악덕도 없는 기사라야 하니까요.” (P.179)

 

이처럼 뛰어난 자질과 품성에, 신실한 믿음을 가진 기사라면 만인의 주군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속세의 주군 관계를 초월하는 성격이다.

 

작가가 페르스발과 고뱅의 두 주인공을 등장시킨 연유와, 미완성 작품이지만 대충이나마 향후 이들의 행보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진정한 기사는 무용만이 뛰어난 것으로는 부족하다.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페르스발은 이 점이 누락되었다. 반면 고뱅은 완벽한 기사상의 구현이다. 용맹과 예법, 그리고 신앙을 고루 겸비하였다.

 

작품 말미에 페르스발과 고뱅은 만나도록 예정되어 있다. 페르스발은 그라알을 찾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여 종국에는 고뱅과 동등한 수준에 올라올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작품의 본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또 하나의 <천로역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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