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탄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685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지음, 진일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대서사시 <트리스탄>의 국내 초역이다. 12세기~13세기에 붐을 일으켰던 트리스탄과 이즈[이졸데]의 이야기 중 하나다. 미완성작인데도 2만행 가까운 대작인데, 분량 면에서는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보다도 장대하고 <파르치팔>에 견줄 수 있을 정도다. 편집자에 따르면 원전의 약 15%를 발췌했다고 한다. 원전의 참맛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므로 작품의 분위기 정도만 느끼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앞서 읽은 죠제프 베디에의 <트리스탄과 이즈>와 거의 흡사하다. 베디에가 선대 작가들의 단편들을 종합하고 요약한 것이므로 대강을 이해하기엔 매우 좋다.

 

브르타뉴 지방의 켈트족 전설을 게르만족 작가가 독일어로 썼다. 게다가 바그너는 이를 악극으로 작곡하여 불후의 명성을 남겼으니 흥미롭다. 산문이 아닌 운문 형식으로 읽게 되니 확실히 감흥이 색다르다. 불완전한 운문이지만, 중세 미네징거들이 이 작품을 가지고 낭송하는 맛을 조금이나마 알 듯하다.

 

해설에 따르면, 고트프리트의 이 작품은 묘사의 투명함과 명확함,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서사의 마력, 구체적인 완결성과 인물들의 일관된 성격, 언어의 아름다운 멜로디, 각운으로 중세 궁정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실제 읽어보니 이 평에 대체로 공감하게 된다. 더욱이 작가의 개성이 화자의 의견을 통해 깊게 반영되어 있어 익히 알려진 이야기를 반복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해석으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화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작품의 의도와 성격을 규정짓는다. 화자는 진정한 사랑을 다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그것이 참말로 고통스럽더라도/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줄 것이다./진정한 사랑이/그리움의 고통 속에서 점점 더 불타오른다면/그 사랑은 더 불타오를 것이다.” (P.38~39)

 

또한 화자는 때로는 매우 시니컬하다. 트리스탄이 소년기에 학업에 매진하는 장면을 소개하며 그는 이렇게 첨언한다.
“그것이 자유로부터/등을 돌린 첫 번째였다./.../그때 최상의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시기에/그 자유는 파괴되었다./학문과 그 억압은/근심의 시작이 되었다.” (P.87~88)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운명과 사랑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들의 사랑은 순전한 호의적 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랑의 묘약의 힘의 결과이다. 그들은 자신을 옥죄어오는 약물의 힘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금기의 사랑임을 알기에 노력하였건만 그들은 자신을 다스릴 수 없었고 그들의 사랑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장문에 걸쳐 묘사(P.109~115)하고 있다. 이 대목을 읽은 이라면 그들의 사랑을 차마 더 이상 피상적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트리스탄의 전설에서 사람들은 두 연인의 사랑과 죽음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사랑에 기뻐하고 비극에 눈물 흘린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동정하고 위로해 줄 사람은 다름 아닌 마르케 왕이다. 그는 비단 사랑하는 조카와 아내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아마저도 손실을 입었다. 지극히 관대하고 훌륭한 군주인 그가 이제는 사랑의 배신을 의심하는 평범하고 초라한 사내로 전락하였다. 그는 연인을 감시하지만, 금지는 오히려 유혹을 강화하지 않던가. 화자는 오히려 감시의 부작용과 무용성을 주창한다. 왜냐하면 누구도 나쁜 여인을 감시할 수는 없고, 좋은 여인은 감시할 필요가 없으므로.

 

흰 손의 이졸데에게 한눈을 판 트리스탄의 처지를 조금은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금발의 이졸데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못지않게 아름답고 고귀한 신분의 여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가 목석이 아닌 이상 흰 손의 이졸데를 외면하지 못함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트리스탄이 흰 손의 이졸데를 만나는 장면을 끝으로 고트프리트는 펜을 놓아버렸다. 완성되었다면 더 거대한 서사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완성이라도 작품의 가치는 스러지지 않는다. 두 연인의 사랑은 당대 도덕관을 위배한 것이기에 사랑과 아픔을 동반하며, 사랑만큼이나 죽음도 운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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