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에서 아침을
트루먼 카포티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원작보다 압도적으로 유명한 영화로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소설. 그것을 행이라고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영화를 본 관객은 물론 타이틀만 아는 이라도 누구나 마치 소설을 읽은 듯 한 기분을 느낀다.

영화의 무게감에 비해 훨씬 가벼운 크기와 분량은 일단 안도감을 안겨준다. 중편 정도의 분량이 아닌가. 게다가 영화 못지않게 가볍게 쑥쑥 진도가 나가는 진행에 흡족하다. 가벼운 터치감이 이 작품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작가 카포티의 특성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독자에게 고뇌와 부담을 안겨주는 문체가 아님은 분명하다.

작중 여주인공 할리 골라이틀리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고급 매춘부일 뿐이다. 그녀 자신의 말에서 우리는 매춘과 절도, 마약, 동성애 등 도덕적 기준에서 볼 때 일탈 행위를 그녀를 저질렀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비난조가 아니라 오히려 만사를 이해해주고픈 심정이다. 어린아이가 저지르는 철모르는 행동 정도로 인식된다면 지나칠까?

그녀는 화려한 현대 도시 문명, 그 상징인 뉴욕의 불빛으로 찾아든 불나방 같은 존재다. 그녀는 그 화려함이 외관상에 불과할 뿐 내면으로는 공허함을 미처 알지 못한다. 겉보기에 세련되고 눈길을 끄는 치장을 하지만 어질러져 있고 제대로 된 살림살이도 없는 텅 빈 그녀의 공간과 같은. 게다가 그녀는 항상 ‘여행중’이다. 그녀는 현대판 방랑자요 유목민이다. 이 점에서 그녀는 초현대성을 선취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녀의 본성은 O.J.버먼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짜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신 말이 맞소. 그녀는 ‘진짜’ 가짜이기에 가짜가 아니요.” (P.49)

삶에서 일찍이 뿌리 뽑힌 그녀는 분주한 위악적 생활에서도 안정적 정주를 꿈꾼다. 비록 그 꿈이 외견상 허망하게 비칠지언정. 그녀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방에 가구를 들여놓지 않는 이유는 그녀 자신이 그들과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부와 명성을 욕망하지만 “뚜렷한 자아”(P.62)를 갖고 보석가게 티파니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고 해도 “본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기 바랄 정도로 똑똑하다.

이런 그녀의 똑똑함도 마약조직에 이용당하고, 결혼을 꿈꾸던 호세에게 버림받는 걸 막아주지는 못한다. 이쯤 되면 웬만한 사람이라면 절규하고 자포자기하게 마련이지만 홀리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현대 사회를 부평초처럼 떠다니는데 익숙하므로.

“이제 고양이는 이름이 있을 테니까. 드디어 자기에게 어울리는 곳에 닿았으니... 아프리카의 오두막이든 어디든 할리도 그러면 좋을 것을.” (P.170)

이는 작중 화자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의 바램일 것이다.

* 영화가 원작을 어떻게 변용시켰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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