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 / 김영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유전자로 조망하는 성과 인간의 모습]

영화제목에는 ‘누구누구의 XXX’ 라는 유형이 종종 눈에 띈다. 주로 유명한 영화배우가 출연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대개의 경우 영화 자체의 작품성은 별로다. 『붉은 여왕』도 앞에 ‘매트 리들리’라고 저자의 이름이 병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가 꽤나 유명한 사람인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일전에 베스트셀러였던 『게놈』의 저자란다. ‘붉은 여왕’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하였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에 빗대어 부제 그대로 인간의 성과 진화를 풀이하고 있다.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에서는 글자 그대로 ‘성(sex)’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서처럼 유전자의 선택과 유전노력이 생물의 성의 존재이유와 양성 구분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는 자신의 우수한 형질을 보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무성생식을 통한 번식도 가능하지만, 이는 기생생물(바이러스 및 기타 병균 등)의 생존 위협에 대한 적합한 대책이 되지 않으므로 필요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성생식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저자는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기생생물은 끊임없이 숙주에 침투하려고 시도하는데, 숙주는 이를 저지하려고 노력한다. 기생생물의 성공적 침투는 숙주의 생명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그래서 다양한 유전자 조합이라는 자물쇠 장치를 마련하지만, 이는 장기적 효과를 얻지 못한다. 기생생물도 여기에 맞는 열쇠를 지속적으로 개발한다. 결국 ‘붉은 여왕’처럼 기생생물과 숙주의 치열한 전쟁 속에 진화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는 때로는 개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진화관과 대비된다고 하겠다.  

후반부에서 매들리는 위의 관점을 인간사회에 적용하고 있다. 인간이란 종도 유인원의 하나에 다름 아니다. 남자(수컷)와 여자(암컷)의 본성에 존재하는 차이는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유전자 차원의 본성적 차이로 교육으로 차이가 해소될 수는 없다. 수컷은 유전자 번식의 기회를 증가하기 위하여 가급적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려고 한다. 그들은 정자만 제공하면 되는 유리한 입장이다. 반면 암컷은 정자를 받아들이고 새끼를 출산하고 양육하여야 되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이므로 최고의 수컷 유전자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각각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표출된다. 지구상의 많은 민족이 과거에 일부다처제였으며, 현재도 일부는 계속 유지되고 있음이 결코 우연한 현상으로 아니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책은 많은 신기한(적어도 나에게는) 주장을 담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관점, 근친상간 금기 및 유태성숙, 성적 매력이 있는 아들 이론(피셔 이론)과 건강한 자손 이론(좋은 유전자 이론) 등 예전에 생물교과서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여러 최신의 다양한 생물학과 유전학 개념이 소개되고 있어 지적 흥미를 끌어당기고 있다. 여기에 담긴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조작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나도 그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물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점검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왜 스스로 거부하겠는가.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움을 토로하겠다. 번역의 문제인데, 전체적인 흐름을 보건대 아주 매끄럽게 이어져야 함에도 문장의 호흡이 단절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문장을 알고 내용을 전달하기 보다는 그냥 단어를 옮겨놓는데 불과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좋은 외서는 좋은 번역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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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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