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모색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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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누구를 위한 논리인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의 IMF 사태와 관련하여 대다수의 시각은 경제구조의 취약성 내지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소수의 비주류 학자들은 소위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아시아경제의 눈부신 성장 특히 화교권의 경제력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서구에서 조직적으로 금융위기를 조장하였다는 견해이다. 어떤 주장이 진실일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하지만 바로 단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이 IMF 사태의 촉발점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촘스키의 저작은 비주류의 견해가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촘스키가 내내 강조하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닉슨대통령 시절 브레튼우즈 체제를 무너뜨리고 국제간 자본이동을 자유로이 놓아준 데서 문제가 파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이동의 자유는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경제를 서구선진국에 예속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더구나 소수의 부유층에 부가 편중되고 이들이 권력과 언론을 장악하면서 국민 대다수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도록 강요와 세뇌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인간 개개인보다 우월한 법적 지위와 특권을 향유하고 나아가 국가조차도 뛰어넘으려고 한다. 기업은 철저한 일인 독재체제이다. 그의 절대적 목적은 이익창출이며 효율성을 강조하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운영시스템을 보유한다. WTO와 MAI는 기업과 소수 특권층에게만 유리한 시스템을 전 세계적으로 보급시키는 첨병 역할을 수행한다. 언론을 통해 대다수 국민에게 불리한 측면은 은폐하고 교묘한 논리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리하여 마치 신자유주의야말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결합이며,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인양 오도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시장을 완전 개방한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번영의 길에서 피폐의 나락으로 떨어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적절하게 자본유출을 통제하고 시장을 조절한 칠레 같은 곳은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촘스키는 묻고 있다. 누가 기업에게 인간과 같은 자격을 부여하였는가. 신자유주의는 누구에게 혜택을 가져다주고 있는가. 특정 소수는 넘쳐나는 돈을 주체할 수 없는 반면,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들은 날로 힘겨운 일상에 치여 살아가는 것이 진정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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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5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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