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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춘추 - 한글고전총서 4
임동석 옮김 / 동문선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2,500년전의 실천적 지성인을 만나다]
안자(晏子)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공자와 동시대인이라고 하면 새삼 그런가보다 하고 여기고 만다. 한마디를 더 보태서 공자도 그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라고 한다면 그제야 보통사람은 아닌가싶게 생각하리라.
공자는 허약한 노나라 사람이지만, 안자는 강대한 제나라 출신으로, 세 명의 임금을 섬기며 재상으로 제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다. 동시에 제나라를 위하여 공자가 뜻을 펼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공자와 안자가 당대의 라이벌이라고 말한다면,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분기탱천할지도 모르겠다.
안자의 사상은 이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전하여 온다. 물론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라 그의 언행을 후세인들이 모아서 정리하였다. 그는 단신에 용모도 준수하지 못하였던 탓에 많은 놀림을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촌철살인의 언변과 성심을 다하는 태도, 앞날을 꿰뚫어보는 지혜 등으로 이미 동시대인으로부터 크나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공자처럼 복잡하고 실행이 어려운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도 인의예지를 언급하지만, 유가와는 달리 보통사람도 따르기 쉬운 필수적인 요소만을 강조하였다. 안자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일체 배제하며, 백성을 위하여 혜택이 돌아가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였다. 임금에게 진정으로 고하고, 논박하고 힐책하고 때로는 관직을 버리고 떠나기조차 하였으면서 오직 임금을 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였다.
당시 중국과 제나라에서 그가 차지하는 지위는 실로 막중하였다. 안자가 당시 임금인 경공에 실망하여 낙향하자, 즉시 나라안은 권문세가가 휘잡았고, 나라밖에서는 다른 제후국들이 제나라에 등을 돌렸다. 소위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이었다. 그러다가 안자가 다시 재상이 되자, 오만한 귀족들도 즉시 머리를 조아리고 각국도 다시금 제나라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였으며, 백성들도 만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공자가 자의든 타의든 관념적 지성인의 한 전형이라면, 안자는 세상을 다할때까지 실천적 지성인의 자세였다. 그는 유가가 사람들에게 따르기 어려운 것을 따르도록 요구한다고 비판하였다. 공자가 유세의 도중에 많은 제자를 가르쳤지만, 그는 정사에 너무 바쁜 탓에 그러할 여가조차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안자는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사상마저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안자는 분명 위인이었지만, 그의 뛰어남도 제나라에서 역성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안자의 정치는 개인에 귀속되었지 제도로서 제나라에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분명 시대적 한계이다. 절대군주의 의사에 만사가 좌우되는 상황에 어찌 법과 제도에 의한 정치가 뿌리내리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