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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ㅣ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평점 :
[알려지지 않은 슈바이처, 전쟁과 인간애]
근자에 들어 우연치 않게 전기물을 연속으로 접한다. 이제 머리가 굵은 탓인지 아니면 세상사에 물들었던지 전기물을 대하는 내 자세도 위인전기를 대하는 어릴적과는 확연히 다름을 새삼 느낀다. 전기물에서 인간적인 내음을 원한다고 하면 지나친 바램일까.
노먼 베쑨이 누구인지는 잘 몰랐다. 그저 무슨 의사라고 하던데.. 의사라고 하니, 저절로 슈바이처가 떠오른다. 노먼 베쑨의 연표를 살펴 보니, 슈바이처와는 동시대 사람이다, 아니 그가 먼저 사망했으니 오히려 슈바이처보다 빠르다고 하겠다. 그런데 왜 슈바이처는 노벨상을 타고 유명해졌고 위인전기집에도 실려 있는데, 노먼 베쑨은 그러하지 못했을까. 이런저런 의문을 일거에 덮어버리는 사실은 그가 중국공산당을 위하여 의료행위를 하였다는데 있다. 소위 ‘중공’의 영웅이 어찌 냉혹한 냉전의 시대, 극렬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대한민국에 그의 이름이 전해진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했겠는가.
50년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 안온하고 행복하지는 못하였던 듯싶다.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못하였고,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모습은 개인적 간난을 극복하고 스페인내전과 중일전쟁에서의 인도적 의료행위를 통하여 인간애를 널리 확산시킨데 있다. 그는 인간의 목숨을 파리목숨처럼 여기는 파시즘과 군국주의를 극도로 혐오하였지만, 그가 프랑코군과 일본군 병사를 개인적으로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전장터에서 거꾸러지는 모든 병사들이 모든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닌 환자였다.
캐나다와 중국에서 비록 그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많은 이들이 그를 기리고 있다고 해서 그가 위대한 것은 아니다. 그는 불같은 성미로 전장터에서 일각이라도 치료를 지체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환자를 앞에 두고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내 수술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목숨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어찌 하겠는가, 바로 타고난 그의 숙명인 것을..
인간사는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전쟁영웅을 탄생시킨다. 우리들은 그들을 우러르고 신성한 존재로 떠받든다. 역사 속에서 전쟁영웅을 제외하면 얼마만한 영웅들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렇듯이 우리들은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전쟁과 영웅의 출현을 갈망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파괴와 죽음의 본능이야말로 인간의 식욕과 성욕을 잇는 제3의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분노와 광기의 한복판에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가 자문할 때, 비로소 슈바이처나 노먼 베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만시지탄에 빠져든다. 평상시에는 외면하다가 지치고 힘들 때,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인가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가 상징하는 마지막 희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