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생의 순례자 시튼 (양장) - 동물기의 작가 시튼이 쓴 자서전
어니스트 톰슨 시튼 지음, 작은우주 옮김 / 달팽이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삶과 의지로써 성취한 자연인]
파브르의 곤충기와 나란히 언급되는 동물기의 저자 시튼의 자서전이다. 곤충기는 어릴적에 아동판으로라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반해 이상하게도 동물기를 읽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튼의 동물기'는 실은 이름만이 유명한 것에 불과하였던말인가. 이런 오해는 '동물기'가 '곤충기'처럼 단일제목으로 된 시리즈라고 착각한데서 연유한다. 사실 '동물기'라는 표제는 없다. 다만 시튼이 발표한 일련의 저작물을 통칭하는 용어일 따름이다.
여하튼 '동물기'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시튼이 누구인지, 어디 사람인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는 관심권 밖의 영역이었고, 마땅히 이를 안내해줄 책도 드문 형편인 시점에서 저자의 자서전을 접하게 되니, 반가움이 와락 다가선다.
책은 양장으로 꽤 두툼하다. 이는 최근의 유행이라고 할만한 책의 사이즈가 표준(신국판)보다도 작은데서도 기인한다. 체게바라 평전, 닥터 노먼 베쑨, 3일간의 자유(존 브라운 전기) 등도 역시 그러하니까.
시튼 자서전은 다른 자서전과는 내용면에서 약간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생의 순서에 따라 구성되어 있지만, 개인적 삶의 세세한 부분을 드러내어 독자에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보다 중심이 되는 것은 인생에서 자연세계와 조우하여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심취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런 탓인지 각종 동물 들의 삽화 및 스케치가 군데군데 보인다. 따라서 스토리 중심의 전기물에 익숙한 독자라면 쉽사리 재미를 붙이기 어려울 듯 하게도 여겨지지만, 동물기 등에 흥미를 품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여러 동물기의 저작 배경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기에 장단점이 있다고 하겠다.
적어도 내게는 어렴풋하게 밖에 생각나지 않은 동물기 탓에 새로이 접하는 내용마냥 신선한 흥취를 자아내는 매력이 있다. 다 읽고 나서는 동물기를 제대로 읽고 싶은 생각에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면서 무슨 타이틀이 번역되었는지 조회하는 나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시튼과 야생세계의 만남은 야외로 소풍가는듯 가볍고 유쾌하게 이루어진게 아니다. 시튼은 생의 수단으로 농장을 개척하려고 하려는 부모와 형제들 가운데 전형적인 개척민의 아들이었다. 그에게 캐나다 겨울숲의 냉혹함은 눈보라와 추위 등 낭만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다. 거기서 그는 생명 유지를 위하려는 치열한 노력에서 야생과 마주쳤다.
곳곳에 보이는 삽화는 새삼 시튼의 예술가적 자질에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런던으로 유학가서 겪는 비참하기조차한 빈궁함, 청년의 자부심을 꺾게 만드는 탈장 정조대(?)에 관한 언급에서는새삼 연민의 정마저도 느끼게 한다.
근년들어 환경, 생태, 자연분야 등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러한 책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앞으로도 좋은 책들이 잇따라 발간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