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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농담과 우연, 그리고 인간]
여러분은 농담, 우연, 실수와 같은 어휘들에서 어떤 동질성을 유추해 낼 수 있겠는가. 보통의 경우라면 의도가 반영되지 않은 탓에 결과 이행을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 일상성의 한 흔적 정도. 하지만 우리는 이미 프로이트를 겪었다. 정신분석의 깔때기를 통과하면 농담, 실수 등은 더이상 본래의 면책특권을 향유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것이 사회적 파장을 촉발하고 역사적 사건으로 귀결될 경우에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제목 자체가 작가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경은 체코 공산시절. 대학생인 주인공 루드빅은 공산당 청년위원으로서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엽서에 장난삼아 불온한 문구를 적어 보낸다. 그리고 반공주의자로 낙인찍혀 사회의 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그는 그것이 단지 농담이었음을 주장하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회의주의자 루드빅은 진정 죄가 없을까. 프로이트라면 유죄를 선고했을 것이다. 그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루드빅은 군대로 쫓겨나 탄광에서 몇년간 광부로 일한다. 그리고 간신히 허가를 엉어 복학하고 과학자가 된다. 헬레나는 그를 추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동료의 부인이다. 야로슬라브는 루드빅의 죽마고우로서 전통음악의 대가이지만, 점차 루드빅과 사이가 멀어진다. 소설은 章을 달리하여 이 삼자의 삶을 모습과 내면을 그리고 있다. 루드빅은 헬레나를 농락하려고 했지만, 헬레나는 그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느낀다. 야로슬라브는 전통음악의 순수성이 쇠퇴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파란만장한 인간 군상들의 인생은 루드빅의 농담 하나로 엄청나게 요동을 쳤다. 만약 그가 농담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름대로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고, 야로슬라브와의 관계도 소원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헬레나와의 설킨 인연도 맺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농담을 한 루드빅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옳을까? 사람은 습관적으로 농담을 한다. 농담의 가치을 찬양하는 글은 찾기란 쉽다. 의학적으로도 농담은 건강에 유익하다. 물론 과도하지 않는 범주내에서. 루드빅이 농담을 한게 잘못이라면, 우리는 모두 엄숙한 표정의 철학자로 인생의 역정을 헤쳐나가야 함이 마땅하다.
왜 역사는 개인의 농담 한마디를 관대하게 용인하지 못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나약한 개인에게 어쩌자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가. 사회와 역사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가치란 어떤 의의와 비중을 차지하는가. 역사의 우연으로 인하여 개인의 삶이 얼마나 굴곡을 겪게 되는가.
작가의 이런 관심은 이십년 가까이 경과한 후 발표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관통하는 모티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