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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임진년 아침이 밝아오다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7
이순신 지음, 송찬섭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9월
평점 :
몇달간 이어온 이순신과 임진왜란 집중독서의 마지막이다.
'난중일기'에 대하여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뇌리 속에 이순신 장군은 신화적 존재로서 굳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은, 비단 학교와 가정에서의 교육적 세뇌 작업에 귀인되지는 않는다. 전쟁은 영웅을 낳는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대첩의 탁월한 전략과 명량대첩의 불가사의, 그리고 그 드라마틱한 최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숨길과 눈길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는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조 한 수, 왜적의 총탄을 맞아 스러져가면서 남기는 최후의 한 마디. 그것을 눈물 한 자욱없이 스치는 사람은 아마도 감수성이 바닥을 드러낸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래서일까. 영웅적 이순신 상에 대한 외경심은 오히려 우리에게서 이순신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화폐에 나오는 그럴듯한 도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속에 어떤 인간적 감정이 개입할 수도 없다. '성웅'이라는 단단한 외피 속에 갖혀있는, 그래서 존경하지만 친근하지는 않는 존재, 그것이 작금의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순된 감정인 듯싶다.
'난중일기'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연약하고 인간적인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피 한방울 나지않는 냉철하며 카리스마적 위인이 아니다. 수시로 병마에 끙끙 앓고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는 약하디약한 육체를 지닌 인간. 가까운 사람들, 특히 어머니와 막내아들의 죽음에 통곡하며 스스로를 원망하는 따뜻한 인간애. 자신을 모함하고 터무니없이 일처리하는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감정의 토로. 그것은 우리같은 평범한 이들이 일기장에 적어놓는 내용과 똑같은 것이다. 더우기 일기에는 전쟁에 관한 중요한 내용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도 적혀있다. 누구에게 쌀 몇 말을 주었다는 것, 타고다니는 말이 병들어 죽어 묻도록 하였다는 것, 아무개가 병들어 마음이 아프다는 등 이 모두가 이순신이라는 석 자를 제외하면 눈여겨보지 않은 장면들이다. 하지만 바로 이순신 장군의 전쟁중 기록이기에 더할 수 없는 가치가 포함된다. 이순신 장군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오래도록 명성만이 높았으나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난중일기'. 청소년본으로 접한 이후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 읽는다. 노모의 죽음에 "어서 죽게 해달라"며 통곡하고, 내아들 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듣고 탄식하며 "내게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지경을 당한다는 말인가?"하는 부분에서는 절로 눈앞이 뿌여진다.
소박한 인간의 모습, 바로 그것이 '난중일기'에서 발견하는 이순신의 진면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