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남들이 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 문학 작품에 대하여 나는 동감을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혹시 내가 작품을 잘못 대한 건 아닐까 하는 자문에서 시작하여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겨우 요것밖에 되지 않나하는 자기반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또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는 행위에서부터 머리를 쥐어뜯는 행동까지 자학의 형태도 색색이리라.

내 경우가 바로 이러하다. 파울로 코엘료, 수년전부터 국내를 휩쓴 소설가. 대중적 지지도와 평단의 호의적 언사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작가이다. 그런 그의 작품을 나는 이제 처음 접한다. (작년 중반에 잠깐 '연금술사'를 읽은 적은 있었지만)

대개 소설을 완독하게 되면, 찐한 여운이 남는다. 때로는 가슴벅찬 감동일 수도 있다. 아니면 불의에 대한 울분과 주인공에 대한 애처로운 심경이기도 하고. 또는 단순히 슬픈 감정에 눈앞이 시큰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전혀 그게 아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장을 다 덮어도 아무런 뒷맛이 나지 않는다. 아무 언급할만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십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자살을 시도한 젊은 여성. 자살 후유증으로 심장 이상으로 일주일 후에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여성이 일주일을 보내면서 삶의 의의에 대해 자각하고 한 남자와 정신병원을 탈출한다는 스토리. 사실 여성의 죽음 예고는 의사의 놀라운 실험이었다는 뜻밖의 반전. 이것이 줄거리로만 본 작품이다. 더구나 작품의 주제도 단 한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것도 독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작중에 저자의 입을 빌려서, 친절하게도.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296면)

요는 이러한 주제의식과 스토리를 어떻게 하나의 유기적인 요소로 엮어서 문학적 승화를 달성해 내는가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내게는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는다는 게 나의 대답이다. 이것이 작품 또는 독자의 수준이 낮다는 표현은 아니다. 단지 취향의 차이라고 언급하고 싶다. 지식의 영역에서는 불멸의 진리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감성의 영역은 사정이 다르다. 만인이 좋다는 것도 홀로 싫어할 수도 있고, 그것이 허용되며 때로는 존중되기도 한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에서는 괜찮은 듯 다가왔지만, 이 작품은 전혀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 이 말로 끝맺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근대나무 2011-11-1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3.2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