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류시화의 글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찍이 시인 류시화가 구도와 명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도 및 인디언에 관한 일련의 책을 써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펼치고자 하는 유혹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그건 왜였을까. 기실 이 책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와 같이 세트로 판매하는 것을 오래전에 구입하였다가 이번에 겨우 펼쳐든 것이다.

저자가 인도여행(보다 정확히는 구도의 길이라고 해야겠다)을 수차례 하면서 체험한 일화 중 특히 가르침이 될만한 내용을 모아 놓았다. 하필 인도일까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종교와 철학이 현실과 불가분의 긴밀성을 갖고 그 생명력을 굳건히 유지하는 곳이 지구상에 인도를 제외하고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 제2위의 인구대국이며, 인도 아대륙의 광대한 영토, BRICs로 통칭되는 신흥 경제개발대국.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화두가 가장 저열한 밑바닥과 삐걱거림없이 병존하는 공간, 그게 나 아니 일반인의 인도관이다.

무엇때문에 작가가 그리 인도에 집착하고 몰두하였을까 모른다. 찌는듯한 더위가 지저분함과 결부되어 휴양지가 되기는 어려울텐데. 워낙 뿌리깊은 역사 덕택에 찬란한 문화유산은 간직하고 있을터이나 류시화의 눈에서 유형적 문화기념물에 대한 관심을 찾기는 어렵다. 그의 관심은 오직 인도의 사람들, 신과 가까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책의 글처럼 우리 모두는 인생수업을 받기 위하여 지구라는 별에 잠시 온 여행자인지 모른다. 어떤 시인은 한세상 잘 놀다 하늘로 간다고 백조의 노래를 남겼지만 말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인생은 신과 더불어 사는 삶, 도처에서 신을 발견하고 신의 뜻에 맞게 심신을 정돈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신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퉁명스러운 검표원에게 초라한 구도자가 당당하게 응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망고주스를 파는 노인은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연상시킨다.

인도라는 나라는 그동안 관심건에서 벗어나 있었다. 전통적인 중국문명권도 아니고 근대화이후 서구화의 초점에서 배제되었으니 당연지사이다. 정치적으로도 가까운 동맹국이 아니며,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저 아래 있으니 눈여겨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수많은 패키지상품이 개발되어 지면을 도배하면서도 인도 패키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개별여행객들만이 드문드문 찾을뿐.

책장을 덮고서 인도에 가볼까하는 상념이 스친다. 그건 작가가 그려낸 인도의 정경이 아름답고 화려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종전 인도의 선입관을 강화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더럽고 속이는데 능숙하며 여러모로 불편한 이미지 말이다. 그럼에도 인도와 인도인들이 궁금한 것은 오늘날 서구화의 강력한 진전으로 원자화된 우리 사회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그곳에서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찾기 쉽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가능성이다. 물질의 빈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가득 채우기 열망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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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11-11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5.5.29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